닳아서 윤이 나는 몽당뿌리

흙이 닿을 때마다 생기가 돈다

간신히 잡은 물기에 몸을 기대고

얕은 숨결에도 맺히는 멍울에

빨간 물결이 언덕을 오른다

아무도 말 걸지 않았던

시간이 함몰된 곳에

내려올 때 꽃물이 흥건하다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나는 지금껏 너무 많은 것들을

훼손하고 살아왔구나

순한 정복을 하고 엎드린 너는

잎인지 뿌리인지

혹은

기어가다 으깬 무릎에 핀 꽃 언저리에서

붉은 문신으로 자발스레 웃고 있다

나에게도 기어오라 뿌리 한 촉 떼어주는

저 편리한 잠식(蠶食)

*꽃잔디: 흙이 허물어지지 않게 심어서 지면을 보호하며 주로 조경석 틈 이나, 제방, 무덤, 정원, 언덕 등에 심기도 한다.

정소란(시인)

정 소 란
한산도에서 출생하여
월간 조선문학으로 등단,
현재 죽림에서 꽃집을 하며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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