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김종달 선생님이 우리 초등학교로 부임하여 담임을 맡으면서 학교생활 분위기가 살벌하게 바뀌었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고, 당일 하여야 하는 공부가 끝나지 않으면 집에 보내 주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갔고, 부모님들은 걱정이 되어서 호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오곤 하였다. 집에 가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고 공부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들의 가정 형편을 다 알고 있었다. 달리기 선수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회초리를 들고 뒤따라 같이 뛰면서 선수를 훈련시킨 일화는 동기들에게는 신화이다. 그러한 덕분에 체육 대회에 나가면 1등을 거의 휩쓸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의 성적은 날로 좋아졌고, 농촌 학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좋은 진학 성과를 냈다.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하고 노년을 창원에서 보내게 되었고, 저승에 가시는 날까지 명절과 스승의 날에 뵈러 다녔다, 선생님은 고향 뒷산 언덕에서 영면에 드시면서 손수 마련한 비문에 자신의 일대기를 기록하시고, 나의 이름을 그 비문 말미에 남겨 주셨음을 묘소 비석에서 볼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는 자취생으로서 땔감하기, 빨래, 밥 짓기 등이 우선이었다. 지게를 지고 출근하시는 교감선생님은 염소 키우고, 학교 텃밭 일구는 등 학교의 험한 일을 도맡아 하셨다. 교감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허드렛일을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였다. 학생 화장실 벽에 낙서를 많이 하여 문제가 심각하였다. 교감선생님은 화장실 변기 앞에 커다란 종이를 붙여 주고는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낙서를 하도록 하였고, 낙서장을 복도에 전시하여 두기도 하였다. 결국 화장실의 낙서가 없어졌다. 직접 짠 염소 우유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모범적인 활동을 한 학생을 살짝 불러서 먹도록 한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은 커다란 몽둥이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오셨고, 무작위로 학생을 불러내어 칠판에서 문제 풀이를 시키는 바람에 수학 예습은 빠짐없이 하게 되었다. 덕분에 문과적인 취향을 버리고 이과를 선택하여 공학도가 되었다.

권순석 교수님을 대학에서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결혼한 직장인이 대학원에 다니는 고충을 늘 응원하여 주셨다. 박사학위 논문을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하기 위하여 교수님과 같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다. 교수님은 한손에 1불(800원)하는 바나나로 아침 식사를 하자는 달콤한 제안에 삼일 간을 바나나와 물로써 아침 식사를 하였으나, 결국 나는 배 속의 울렁거림을 참지 못하여 중국집에서 7불짜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바나나를 보면 그때의 생각이 나고,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과일 중에 하나이다. 대전 현충원에 교수님을 모셔두고 은행나무 잎이 길바닥에 흩날리는 가을날 그곳을 떠났다.

사랑과 회초리 그리고 혹독한 가르침이 없었으면 나에게 학문은 없었을 것이다. 은혜를 주신 선생님들은 저승에 가셨다. 스승의 날이 되어도 감사함을 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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