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콜택시 운전원 대표 유성일 씨

“어서 오이소~”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장애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10년차 베테랑 기사 유성일 씨(56)다. 통영시에 장애인콜택시가 생긴 것이 2009년 7월이니, 그는 거의 초창기부터 장애인콜택시를 운전해 왔다.

“동양그룹(오리온)에 21년 동안 근무하고, 퇴사한 뒤에 장애인콜택시를 운전하기 시작해 올해 10년차에 접어듭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유성일 기사는 당시 상고였던 동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부산에 있는 회사에 입사했을 뿐 거의 통영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군생활도 39사단 수월리 초소 등에서 했고, 제대 후 입사한 오리온에서도 통영지점에서 일했다.

“동양그룹은 대기업이어서 경쟁이 엄청 치열했어요.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실적을 올려야 하니 스트레스가 많았지요. 경력이 쌓일 때까지는 몰랐는데,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니까 대학졸업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에는 지금처럼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을 때다. 두 번째 직장으로 찾은 곳이 장애인콜택시였다. 당시 통영장애인콜택시는 영리사업체인 택시회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직장으로서 기사가 됐어요. 그런데 막상 장애인들을 접해 보니 제가 배울 게 너무 많은 거예요. 특히 선천적 장애인 중에는 너무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많이 부끄러웠죠.”

보기만 해도 긍정 에너지가 전달되는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그는 자부심과 보람을 찾았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사람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하지만 천사 같은 장애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도에 장애인이 되는 경우, 몸에 장애를 입으면서 마음에 같이 장애를 입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고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졌을 때, 세상을 비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사들에게 갑질을 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함부로 욕하고 폭행도 하고…. 그런 일을 당하면 기사들도 기분이 나쁘죠.”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고, 기사들은 난데없는 폭언에 화가 나는 악순환이 있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건 지체장애인협회가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면서부터다.

“2018년 4월부터 지체장애인협회가 장콜(장애인콜택시)을 운영했어요. 그때부터 두 달에 한 번씩 교육을 하더라고요. 중도에 장애인이 됐을 때 어떤 충격을 받게 될지, 그분들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환자별로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같은 교육을 받다보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죠.”

어떤 중증장애인은 시내 속도 40km가 버겁다. 노면이 조금만 거칠어도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장애인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고통스럽다. 10년차에 접어든 유성일 기사는 이런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해 가며 운전을 한다.

“부끄럽지만, 전에 택시회사에서 운행할 때는 콜이 없을 때 집에 가서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부르면 나가지.’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도 되는 줄 알았지요. 집에서 나오니 늦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일반인과 달리 장애인에게 기다리는 5분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이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또 회사 시스템이 콜이 안 들어오더라도 근무 중에는 정복을 입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돼 있어서, 부르면 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

현재 장콜은 죽림 신세계정비를 차고지로 하고, 공설운동장 주변을 대기장소로 하여 통영 관내 어디든 15분 내에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시군에 비교해서 운영방식은 통영이 최고입니다. 창원이나 김해는 지금도 3교대를 하는데, 교대 직전에는 기사들이 장거리를 안 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장애인 입장에서는 공백이 생기는 거라예. 그런데 통영은 기사들이 1일차는 9시간, 2일차는 11시간 일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교대 공백이 없는 겁니다. 장거리 손님은 퇴근시간이 많이 남은 기사에게 배정하니까요.”

그래도 장거리 운행으로 근무시간이 초과하게 되면 다음 근무 시간에서 제해 주는 방식으로 기사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으니, 기사들도 초과근무를 불평하지 않는다. 전에는 반바지 입고 마음대로 근무했지만, 그런 만큼 갈등도 있었고 자부심도 약했다. 지체장애인협회가 맡고 나서는 여러 가지 규율과 교육, 직원평가가 생겼지만, 오히려 자부심과 신뢰가 더 커졌다.

지체장애인협회 김민호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이 아픈 만큼 기사님들이 감정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산이 정해져 있으니 임금으로 보상해 드릴 수는 없고, 기사님들이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방법으로 서로 맞춰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한 장애인은 “타지방에서도 장콜을 이용하는데, 통영이 운영체계나 차량상태가 최고예요. 딱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문이 수동이라는 거.”라고 말한다.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혼자서 문을 여닫기 힘든 이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10년째 장애인의 발이 되면서, 유성일 기사는 요즘 꿈이 하나 생겼다. 장애인 여행사를 차리는 것이다.

“이분들이 어디 가고 싶어도 차편이 마땅치 않으니 어려워요. 간신히 치료만 받고 다니는 삶이 아니라, 삶의 질이 좀 높아지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을 장애인과 나누고 싶은 꿈이다.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