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동원수산 이정길 대표

4월, 산에서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가 저마다 향기로운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봄의 전령사 멍게가 알알이 자라 봄을 알린다.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멍게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대표 수산물이다. 울퉁불퉁한 껍질 속에 싱그러운 멍게가 향기로운 봄을 품고 있다.

“멍게, 좋지요. 술안주로도 좋고 비빔밥을 해도 좋고 젓갈을 담아도 향이 그만입니다.”

25년째 멍게 가공을 하고 있는 새동원수산 이정길 대표(64)는 멍게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인다.

스무 살 때부터 각종 수산물 양식과 가공공장에서 젊은 날을 보낸 그는 마흔이 되면서 자기 사업을 시작할 때 ‘멍게’를 단일품목으로 선택했다. 멍게의 수익성뿐 아니라 맛과 향에 매료된 탓이다.

이정길 대표는 원래 고흥에서 태어나 자랐다. 스무 살 때 통영에 놀러왔다가 통영이 너무 좋아 그대로 눌러 앉은 것이 벌써 44년이다. 수산업 공장을 다니게 된 것도 통영에서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곳에서 군대를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키웠다.

동호동에서 10년, 산양면으로 옮겨와 15년, 25년 동안 이정길 대표는 어민들에게서 멍게를 받아 와서, ‘까고 씻고 소분해 출하하는’ 일을 해왔다.

이정길 대표의 멍게 가공공장은 산양면 바닷가에 있다. 멍게를 선별하는 작업장 예닐곱 개가 나란히 잇대어 있는 곳이다.

선별장에서는 멍게 어민들이 멍게 씨를 붙여 깊은 바다에서 2~3년 동안 키운 멍게를 크기나 상태별로 선별한다. 배에 줄줄이 매달려 작업장까지 온 멍게들이 자동 도르레로 줄줄이 끌려 올라와서는 숙련된 일꾼의 손에 분류되는 과정이 일사분란하다.

깊은 바다 속 세상이 전부였던 멍게들은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대기(大氣)에 놀라 호들갑스럽게 물을 뿜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봄향기 가득 품은 멍게들은 크기대로 상자에 담겨 멍게 전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트럭으로 운반된다. 큰 멍게들은 활어 상태로 횟집으로 가고, 중간 크기부터는 가공공장으로 향한다.

이정길 대표의 가공공장은 선별장 옆에 바로 붙어 있으니 그대로 수레에 실어 작업이 시작된다.

“여기서 선별되는 것뿐 아니라 여러 어민들의 멍게를 두루 받아 작업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그가 있다. 어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좋은 물건을 받고, 깨끗이 가공해 직배송을 하거나 마트나 횟집으로 보낸다.

봄이 무르익는 요즘 이정길 대표의 가공공장에서는 스무 명의 직원들이 일한다. 숙련된 아주머니들이 멍게를 까면 바로 심해수로 세척이 되고, 기계에 작은 봉지를 매달아 정량의 바닷물과 정량의 알멍게를 넣어 포장한다.

“신통하지요. 물고기처럼 사료를 주는 것도 아닌데, 바다에서 제 혼자 힘으로 살아낸 것을 보면 흐뭇합니다.”

이 신통한 멍게들은 올해 코로나19로 때아닌 어려움을 만났다. 12월부터 수확하기 시작해 3, 4, 5월에 최고 성수기를 맞는데, 온나라의 일상생활이 중지되면서 2, 3월 내내 수확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그날그날 소비돼 없어져야 하는 물건이니 바다에서 꺼내올 수도 없었죠. 결혼식이나 뷔페식당의 단골메뉴인데, 행사도 안 되고 식사도 안 되니까요.”

직접적으로 어민 피해가 컸지만, 덩달아 가공공장도 어려워졌다. 모두가 힘든 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조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다 극복하면서 사는 거지. 우리 식구가 20명이 될 때도 있고, 30명이 될 때도 있는데, 노력한 만큼 여러 사람이 서로 나눠 쓰는 것 말고 뭐 바랄 게 있습니까?”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성격 탓일까? 이정길 대표는 크게 들레지 않는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제 길을 간다.

초창기부터 이정길 대표의 가공공장에 멍게를 대온 석봉수산의 김실봉 대표는 그를 “변함없이 꾸준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우리 집에서 생산된 멍게의 80%가 그 집으로 갑니다. 멍게농사를 짓다보면 알이 좋고 나쁘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대표님은 그런 것을 감안해서 까다롭지 않게 받아주시니까 어민 입장에서는 고맙죠.”

수십 년 멍게농사 중 작년과 재작년은 작황이 안 된 데다 가격이 높아서 소비가 안 됐다.

“소비가 약해도 공장은 돌려야 하니까, 보나 안 보나 이대표님도 힘들었을 겁니다. 깔수록 적자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도 이대표님은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한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빚을 내서라도 어민들한테 결제를 제때 해주시거든요.”

김실봉 대표는 이런 신뢰가 통영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증언한다. 수십 년을 살아도 통영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통영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높은 담을 신뢰로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비수기 때는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이정길 대표는 “여행을 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그냥 통영에 머무르며 소일합니다. 통영 같이 좋은 곳이 어데 있습니까?”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새동원수산이 있는 산양면 멍게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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