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중 수필가, 수향수필 사무국장

박길중 수필가, 수향수필 사무국장

1년여 전 통영‧고성에서는 국회의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보궐선거가 있었다. 전직 장수께서 주어진 임기를 영예롭게 다 채우지를 못하고, 법의 심판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민초들이 직접 옥석을 가려 우리 고장을 위해 대신 몸을 바쳐 봉사해달라고 만들어준 자리이다. 그래서 민초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우리 고장의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수군거렸다. ‘그럴 줄 몰랐다. 네 번씩이나 만들어주었는데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은 투표도 없이 당선시켜 주었는데. 이토록 허물어져 가는 지역경제를 살려 달라고 네 번씩이나 힘을 실어 주었는데….’

올림픽이 열리는 해. 우리나라에는 어김없이 국회의원선거가 4년마다 찾아온다. 올해는 4월 15일이다. 그런데 이웃집 어르신께서는 “작년에 선거했는데, 뭐 한다꼬 또 하는고.”라며 의아스럽게 물어오신다. 그렇다, 작년에 국회의원을 새로 뽑았기 때문에 어르신에게는 당연한 의문이고 이상한 일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참관할 때 필수 코스인 국회 헌정기념관에는 ‘국회 진기록관’이라는 코너가 있다. 왼쪽 전시물은 최연소·최고령 의원, 가장 긴 발언을 한 의원,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 등 특이한 이력을 소개한 것이다.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시물은 ‘국회의원 가족 당선 기록’이다. 제헌의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부자 국회의원’(부녀·모자·모녀 등도 포함)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모두 47가족이나 된다. 일부는 가족사진도 함께 전시했다. 이와 별도로 ‘부부 국회의원’이 9가족, ‘형제 국회의원’이 14가족 있다. ‘최초’ 사례나 ‘연속 12회 당선’ ‘3형제’ 등 특이한 경우는 다른 색깔로 눈에 띄게 꾸몄다. 가족의 정치적 자산을 공유한 국회의원이 적지 않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물인 셈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보여주는 방식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최근에 현직 국회의장의 아들이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출마를 결심하는 것 같다. 소위 ‘아빠 찬스’라는 지역구 대물림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선출직을 세습이라고 하는 건 공당과 지역주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을 해보지만 진정 지역과 주민을 위해서 덕을 쌓은 후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인지의 판단은 순전히 민초들의 몫이다.

다시 4월은 오고, 통영·고성을 새롭게 자리매김할 인물을 뽑아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또 한 번 자세히, 그리고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어떤 통영을 만들고 싶은가. 왜, 통영은 해양수산전문가나 관광전문가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굴 패각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만 가는데. 케이블카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 장자(莊子)께서는 “평생 한 번 특정한 관점이나 관념에만 갇혀 버리면 죽을 때까지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마치 말(馬)을 달리듯이 세차다.”라고 통찰하신 바 있다.

특정한 이념 즉, 주의(主義)에 빠지면 서로 다투고 다투는 것이 일상이 된다. 남 탓만 하게 된다. 특정한 관념이나 이념에 갇혀 스스로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애써 추구해도 얻어지는 것은 없다. 소득이 없다. 어떤 주의(主義)도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세계는 변화하는 모든 것들의 세계다. 스스로 지치고 낡아가는 줄을 모른다.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출사(出師)의 변은 화려하다. 4년 후의 통영은 어떤 모습일까.민초들이 악어의 눈물에 속지 말아야 할 사명은 험난하고 어렵기만하다.

출사를 외치는 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눈을 부릅뜨고 미륵산은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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