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진
  • 통영신문
  • 승인 2020.0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어머님은 40여 일간의 병상 생활을 마치고 별세하였다. 우리집에서 어머님을 장의차로 모시고 고향으로 가는 동안 슬픔과 죄송함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효자식을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만 할 수 있었다. 고향에 도착하여 어머님을 꽃상여에 모셨다. 앞소리꾼의 선창에 맞춘 상여꾼들의 복창이 구슬프게 이어졌다. 만장이 휘날리는 그날, 어머님은 아버님 옆자리에서 영면에 드셨다. 탈상을 하면서 어머님의 증명사진을 지갑 깊숙이 보관하였다. 평생 동안 자식을 위한 기도와 희생으로 지내오신 어머님을 내 품에 모셨다. 그 후 직장을 잃고 힘들 때, 자식들이 시험에 낙방할 때 그리고 극한의 고통이 따를 때에도, 나는 어머님의 사진을 내어보면서 매달려 기도하였다. 그리고 응답하여 주셨다. 어머님의 사진은 나에게 용기를 가져다주고,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벌써 28년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친 셋째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하였다.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과연 어린 나이에 유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학교생활, 숙소, 교우관계 등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이별’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눈물까지 보였다. 딱히 위로의 수단이 없었다. 나는 가족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아들 셋과 우리 부부, 다섯 식구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조그마하게 만든 가족사진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게 하여 막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날 찍은 가족사진을 크게 만들어 집안에 걸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가족사진을 보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서도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가족사진을 대하면서 흐트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고, 또한 멀리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세월이 흘러 막내아들은 잘 성장하여 주었고,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미국의 하숙집 사모님의 전달에 의하면, 우리 아들 방에서 기타 소리가 ‘둥~~둥~~둥~~’ 들리면 힘든 일이 있는 날이라고 하였다. 유학 학업이 마무리되고 박사학위를 받는 날에 가족들과 같이 미국의 아들 방에서 며칠을 보냈다. 14년간 힘들었던 학업의 시간 동안 잘 버텨 주고 큰 성과를 안겨준 아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막내아들은 박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증을 나에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아들 방에서 우리 가족사진이 그 방을 지키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머님의 증명사진이 나를 지켜 주고 있듯이, 우리 가족사진이 막내의 유학생활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대 삶이 흔들리는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대를 사랑하는 가족사진을 한번 보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