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1주년 기념 /통영의 3·1운동

통영군민들은 3·1의거의 주모자로 순국한 고채주, 이학이, 허장완 열사의 비를 세워 ‘삼열사비’라고 불러왔는데 이중 허장완 열사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돼 옮겨졌고, 고채주, 이학이 열사의 비가 원문공원에 있다.

일제의 간악한 탄압에도 전국에서 들불과도 같이 3·1운동이 일어났다. 이순신 장군의 정기를 받은 통영에서도 장날마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드높았다.

통영의 3·1운동은 3월 13일의 장날, 십대의 처녀들이 가장 먼저 외쳤다. 호주선교사가 세운 통영 최초의 근대 유치원인 진명유치원의 보모였던 양성숙, 문복숙, 김순이는 장날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장터에 모인 수백 군중이 만세를 외쳤다.

황급히 달려온 왜경들은 주동자인 이 처녀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후 세 처녀는 부산 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에 있을 때 형리는 문복숙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회유했다.

그러자 겨우 열여섯 살밖에 안 된 문복숙은 “너희가 태산을 떠다 옮길 수 있을지언정 태산같이 움직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떠 옮기지 못할 것이며, 또 너희가 강철은 굽힐 수 있으나 강철같이 굳센 우리의 마음을 굽힐 수 없다.”고 말했다. 문복숙과 같이 부산감옥에 수감됐던 김순이는 그해 9월 가출옥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이 장날, 이 어린 소녀들이 만세를 선창하게 된 것은 그 전에 통영 청년들의 만세 모의가 들통나, 진짜 주동자들이 이미 체포됐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얼마 뒤,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진평헌은 서울 3·1운동에 참여한 뒤 요양을 핑계로 고향에 내려왔다.

그는 통영의 청년들에게 서울의 소식을 전하며 통영에서도 궐기할 것을 제안했다.

3월 8일, 진평헌과 통영면 서기 이학 등 19명은 송정택의 사랑방에 모여 다음 장날인 3월 13일에 거사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기로 했지만 독립선언서를 구하지 못하자 진평헌은 ‘동포에게 격하노라’라는 제목의 격문을 직접 작성했다.

다음날 등사판을 조달하고 격문을 인쇄하기로 하고, 그들 중 한 청년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나카무라상점에서 미농지 2천여 장을 구입했다.

‘이렇게 많은 종이를 구입하다니, 혹시 서울에서처럼 만세운동이라도 벌이려는 것 아닌가?’

나카무라상점 주인은 통영경찰서에 이런 사실을 신고했고, 왜경들은 청년들의 행적을 살피며 잠복했다.

일제가 훼손한 이학 묘비 뒷편

9일 밤 8시경, 통영면서기 이학(21세)은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가지고 나와 산양면사무소에서 진평헌, 김형기, 권남선, 배익조, 양재원, 모치전, 강세제, 허장완 등과 합류, 밤늦도록 격문을 인쇄했다. 시간은 10일 새벽 1시를 넘고 있었다.

강세제, 이학, 허장완은 다시 등사판을 갖다놓기 위해 남몰래 통영면사무소로 가던 중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체포됐다. 나머지 청년들은 오전 3시경 산양면사무소에서 만든 인쇄물을 갖고 통영읍으로 돌아오다 잡혔다.

주동자들이 모두 검거된 가운데 13일의 거사는 처녀 보모들의 외침으로 시작하게 됐다.

청년들은 모두 1년씩, 6개월씩의 형을 선고받고 대구 감옥과 부산 감옥으로 이송됐다.

그중 이학 열사는 혹독한 고문을 받아 부산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내 운명하고 말았다. 9월의 일이다.

그러자 부산의 최천택을 비롯한 애국청년들이 이학의 영구를 인수하여 통영으로 운구했다.

부산의 청년들이 김해까지 운구하면, 김해의 청년들이 진영까지 옮기고 다시 마산의 청년들이 영구를 운구했다.

영구 행렬이 이르는 지역마다 수많은 애국청년과 백성들이 통곡으로 맞이하고 통곡으로 조송하자, 일제의 경찰과 헌병은 어떻게든지 영구행렬을 저지하려고 공권력을 동원했다. 결국 마산에서 더 이상 육로 운구를 못하게 되자, 여객선에 실어 통영으로 오게 됐다.

여객선의 귀착지인 통영 강구안은 열사의 주검을 맞는 읍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허장완 열사도 부산에서 마산 감옥으로 이감돼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10월에 옥사했다.

지난해 강구안에서 3.1운동 퍼포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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