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슈메이의 한국살이

미슈메이 중국 출신 통영 시민

귀국하는 1월 28일 아침에 엄마가 맛있는 밥상을 차렸다. 나는 많이 먹지 못했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 안정이 제일이다. 남을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강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혼자서 14일 동안 집에서 격리해라. 매일매일 집에 전화해줘. 엄마는 계속 기다릴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동생이 KN95 마스크를 준비해 주면서 “서너 시간이 지나면 마스크를 꼭 바꾸세요, 언니.”라고 말했다. 나는 가족이 걱정되는데 가족들은 나를 더 걱정하였다.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타이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검사를 받고 또 검사를 받고 기내 안에서도 검사를 받았다. 북경공항에 도착한 뒤에 엄마가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또 검사를 받았다.

28일 저녁 7시 반에 한국에 도착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새벽 1시 넘어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욕을 하고 방도 청소하였다. 옷을 전부 갈아입었다.

중국 뉴스에서는 외출하지 말고 모이지도 말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너무 무서웠다.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도 보호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집에서 격리하는 것이다. 이게 최선이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설날에 격리라니. 2020 설날 아침에는 시차 때문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격리 1주차, 나는 매일 안절부절못했다. 밖에 나갈 때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자동으로 1미터 정도를 떨어졌다. 아는 사람도 모른 척했다. 마트에서는 한꺼번에 음식 만들 재료를 많이 샀다.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돼서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샀다.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전부 중국의 고향 집으로 보내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지금 나는 겨우 이 정도밖에 도울 수 없다. 가족들에게 “다 못쓰면 다른 사람에게 그냥 주어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아침마다 깨자마자 중국과 한국의 바이러스 관련 뉴스를 본다. 밤에 자기 전에도 뉴스를 봤다. 엄마한테 매일 통화를 하였다.

엄마는 “오늘은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니? 푹 쉬고 밥을 잘 챙겨먹어라. 잘 먹어야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가족들도 별일 없으니 안심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매일 전화로 안부를 했더니 가족끼리는 더욱더 친해졌다.

일주일이 지나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해졌다.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갑자기 헝기리의 시인 페토피(裴多菲)가 생각났다.

<자유와 사랑> “생명은 실로 귀중하다. 사랑의 가치도 높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하면 둘 다 버릴 수 있다.”

격리되어 있는 동안 나는 자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길고도 짧은 격리 생활이 끝났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몇 년 후에 2020년을 되돌아보면 이 특별한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인생은 일차 소비품이다. 사회에 유용한 사람으로서 1분 1초의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쓸 것이다. 오늘도 잘 지내고 내일의 계획을 세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다. 일상생활의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간다. 내가 늙었을 때 허송세월한 것을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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