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아직도 차가운 날씨가 여전하다. 아침과 저녁으로 문밖에는 으스스 추위가 버티고 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코끝에는 찬바람이 인사하듯 지나간다. 북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겨울이 남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왕 나섰으니, 발걸음을 바닷가 쪽으로 옮기며 부지런히 걸었다. 겨울이 자신의 잔상을 숨기고 있지만 봄에 꼬리가 이미 잡힌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북포루 초입에 들어서서 올려보니 소나무 무리들이 장승처럼 버티고 우리를 말없이 지켜주고 있다. 땅바닥에는 알이 찬 솔방울이 뒹굴고 있다. 아내는 천연 가습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솔방울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솔방울을 물에 담군 다음 방안에 두면 조금씩 솔방울의 입이 열리면서 물이 증발하여 가습기 역할을 하고 있다. 중턱에 오르니 길 가에는 어린 쑥들이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기지개를 켜는 것은 확실하다. 주변에는 온갖 이름 모를 풀들이 초록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마스크와 장갑을 벗고는 시원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마에는 땀이 맺기 시작한다. 멀리 죽림만이 보이고 통영과 거제 사이를 흐르는 바다 멀리 거제도가 나타난다. 참 아름다운 전경이 그림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벤치에 걸터앉았다. 아들 셋을 데리고 매일 아침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던 일, 새벽에 약수터에서 맨손 체조하던 일 그리고 미국 여행 중에도 새벽 구보를 하던 일들에 대한 추억담으로 휴식의 시간을 메웠다.

하늘 바람은 아직 겨울인데, 땅에는 벌써 봄이 왔다. 동백나무가 가로수를 대신하고 산등선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동백나무 잎에 윤기가 나는 반들거림은 누군가 잎을 닦아 놓기라고 한듯하다. 떨어진 동백 꽃잎으로 하트 모양을 곳곳에 만들어 두었다. 참 고맙고 정겨운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 누군가의 배려가 이곳을 오르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포루에 걸터앉으니 눈이 부신다. 한산대첩의 바다에서 통영 내항으로 몇 척의 배와 요트가 움직이고 있다. 치열하였던 한산대첩이 저곳에서 있었다는 생각이 오늘 유난히 선명하게 각인된다. 통영내항으로 눈길을 가져오니 오른쪽의 운하교가 나타난다. 저 밑에 해저터널이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일본침략 그리고 그 후의 역사가 뇌리에 스쳐진다. 미륵도의 정상이 눈에 와 닿았다. 미륵산 품에 안겨 있는 용화사의 풍경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혹독한 겨울도 온기가 스며든 봄기운을 이기지 못한다. 강인함이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고 기다림이 있으면 성공이 온다. 봄기운이 완연한 그날, 통영은 더욱 포근함으로 우리를 안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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