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티투어 박정욱 대표

 

“자기 때문에 아들이 죽었어요. 겨우 스무살밖에 안 된 그 아들은, 아버지가 이순신이 아니면 안 죽었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이순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사람은 통영시티투어 박정욱 대표(64)다. 쇳소리가 섞인 진한 통영 억양으로 풀어내는 그의 이순신 이야기는 누구나 귀를 기울여 듣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아들 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다음날 쓰신 난중일기를 읽고, 저는 솔직히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뭐라꼬 써놨는고 아세요?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인데도 마음놓고 울어보지 못했다. 소금 굽는 사람 강막지 집으로 갔다.’ …자기 때문에 죽은 아들의 소식을 들어놓고도 부하들 앞에서 한 번도 못 울어봐가, 저~ 외딴 소금 꿉는 집으로 실컷 울어보려 가는 거예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겠어요?”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그에게 ‘통영 최고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는 과찬이 아니다. 개구쟁이 초등학생부터 내로라하는 박사님들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박정욱 대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간다.

박정욱 대표는 ‘어떻게 하면 통영을 떠나지 않고 통영에 기여하면서 살까’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다가, ‘통영시티투어’를 시작하게 됐다.

계명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마산의 무역회사에서 일하다 고향 통영에서 수산물 가공 무역회사를 설립했던 그는 14년만에 태풍 매미로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러고 나서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의 교집합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의 DNA 덕에, 그는 어려서부터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에 더해 삼도수군통제영의 정기가 전해내려오는 통영에 대한 애향심이 특별했다.

한려수도의 중심도시 통영은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저 바다를 감상하고 회만 먹고 가는 것을 보며 박정욱 대표는 ‘통영’이라는 자산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다.

“통영이 어떤 곳입니까?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 만들어진 도시 아닙니까?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면서 통영 역사가 시작됐고, 1604년 통제영이 세워지면서 이순신의 끗발을 이은 종2품 통제사들이 300년 문화를 이어온 곳이에요.”

통영의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지만 그 음식문화의 시작을 모르는 관광객들에게 그는 통제영의 뿌리를 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을 더 알아야 했다. 그는 난중일기부터 시작해 이순신 관련 서적들을 읽어나갔고, 통영사연구회와 21세기 이순신연구회, 도산아카데미 등에 몸담으며 그는 이순신의 전문가가 됐다.

이순신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이야기의 중심은 ‘통영’이다. 서울에서 1년, 2년마다 종2품 통제사가 발령받으면서 한양의 음식, 의복, 음악, 춤이 유입됐고, 솜씨좋은 장인들이 12공방에서 갖가지 예술품을 만들어 진상했던 통제영 300년 역사가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같은 예술가들이 탄생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박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릎을 친다.

“그렇지, 그런 뿌리가 있었던 거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보는 통영의 음식, 통영의 예술인들은 더 이상 박물관에 박제된 모형이 아니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곳저곳에 초청을 받기 시작했다.

고려대 대학원 특강, 도산아카데미 회원 특강, 포스코 신입사원 특강, 포스코 외주사 CEO 컨퍼런스 특강, 한국프레스클럽 특강, 조선일보 '길 위의 인문학' 특강, 통영RCE 시민 릴레이 강좌 등, 그에게 이순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기업체가 줄을 이었다.

책을 쓰라는 둥, 대학원 공부를 더 하라는 둥 그의 이야기가 흘려보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주변에서는 여러 권유를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이야기꾼이지 학자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손님들에게 이순신 이야기를 하다보면 저보다 더한 고수들을 만나게 됩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만, 그분들이 ‘○○ 책을 읽어보셨어요?’ 하고 물어올 때 서늘해지는 기분을 아십니까? 당연히 읽었으리라고 믿으며 대화를 시도해 오는 것인데, ‘못 읽었습니다’ 하고 대답할 때의 그 부끄러움, 그 미안함….”

이런 경험들을 하며 그는 ‘학자인 척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책을 읽었다고 학자가 되는 게 아니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꾼’으로 못박는다.

그런 그가 요즘 유튜브를 시작했다. 얼마만큼의 준비를 해야 할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몰라 망설이고만 있다가 한번 부딪쳐보기로 한 것이다. 관광패턴이 버스관광에서 자유관광으로 바뀐 것처럼, 요즘의 흐름에 맞게 그는 청자의 대상을 온라인으로 넓혔다. 지난달 마지막주에 첫 방송을 시작했는데, 1주일만에 600회를 넘어가면서 그의 방송에는 ‘박정욱 님의 해설은 인문학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다음이 기다려집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책을 쓰듯이,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한 편씩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억양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박정욱 대표에게는 책보다 유튜브가 더 알맞는지 모른다. 이순신의 리더십을 가장 깊이있고 재미있게 강의한다고 평가받는 그의 살아 있는 목소리는 물길없는 바다 온라인 속으로 거침없이 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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