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설날이 지나도 여전히 설날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각종 놀이를 즐긴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연날리기 등을 즐기며 한겨울의 들판이며 논밭이 우리들의 놀이터가 된다. 특히 연날리기는 큰 놀이에 해당되었다. 대나무를 길이 방향으로 잘라서 가늘고 매끈한 댓살을 만들고, 댓살을 붙일 밀가루 풀도 잘 만들어야 한다. 한지를 접고, 구멍을 내거나 연 꼬리를 만들기도 하여 다양한 연을 만든다. 솜씨 좋은 아버지 덕분에 나는 네댓 개의 다양한 연을 가진 적도 있었다. 연줄 싸움을 대비하여 밀가루 풀에 유리 가루나 사금파리 가루를 섞어서 긴 연줄에 바르기도 하였다.

연을 날리는 일은 참으로 멋있고 재미있었다. 약한 바람을 받아서 이륙하고 나면 연줄 타래를 당겼다 풀었다 반복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하늘 높이 올리게 된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을 바라보면 연의 높이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진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탱탱한 연줄을 잡은 손에 느껴오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이었다. 동네 친구와 연싸움을 하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 긴장감으로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연을 하늘 높이 올리고, 연줄을 최대한 탱탱하게 한다. 서로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주고받으면 그때부터는 연줄을 교차하면서 당기고 늘리고 하면서 상대의 연줄을 자른다. 좀처럼 잘라지지 않아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았다. 상대의 연줄을 자르고 난 후 나의 연이 하늘을 지키고, 친구의 연이 어디론가 힘없이 날아가는 광경 그리고 친구의 망연자실한 모습들이 생생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질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동네 한가운데 달집을 지었다. 가운데 커다란 지주목을 세우고 대나무, 소나무 그리고 볏짚으로 커다란 달집을 지었다. 우리는 보름간 애지중지 가지고 놀던 보물 같은 연을 모두 달집에 손수 매달아야 하였다. 흥겨운 농악이 울리고 달이 떠오르면 동네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달집에 불을 넣고 모두가 소원을 빌었다. 나는 나의 연이 불길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론 불길과 함께 멀리 날아가는 광경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였다. 아쉬움에 눈물을 감추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날부터 우리의 정초놀이는 막을 내리고 각자 공부며 농사일을 거드는 일에 들어갔다. 이날을 기점으로 구태를 모두 태워버리고 새해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에도 정월 대보름날 달집으로 그간의 모든 액운을 태워 버리고 희망과 풍요가 휘황찬란한 보름달과 같이 떠오르길 기도한다.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