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슈메이의 한국살이

미슈메이 씨의 가족들. 부모님, 막내 여동생의 매제, 여동생 두 명, 매제 두 명.
여동생의 아들과 딸, 미슈메이 씨의 딸이 한 자리에 모두 모였다.

올해 설날은 고향인 중국에 가서 보내기로 했다. 기분이 참 좋았다.

가기 전에 여러 가지 선물을 샀다. 비싸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는 건강하시라고 정관장 홍삼을 선물로 샀다. 1월 17일 아침에 출발하는데 전날 저녁에 너무 설레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12시쯤 도착했다.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공항에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항 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많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고향 태원에 도착하였다. 여동생과 매제가 나를 데리러 왔다.

동생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넘었다. 한국은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혹시 부모님의 잠을 깨울까 봐 그냥 비행기가 연착해서 아침에 도착한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동생 집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 짧은 시간동안 잠을 잤다. 아침에 부모님의 전화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다. 빨리 준비하고 부모님 집으로 갔다. 온 가족을 만나니 즐거웠다. 어머니, 아버지는 예전과 똑같았다. 어머니는 양고기 만두를 준비해 두셨다. 왜냐하면 나는 몇 년 전에 한국에는 양고기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고향에 오면 동생이 닝샤 지역에 있는 최고급 양고기를 샀다. 이 양고기는 이취(异味)가 없고 고기가 연하다. 집에 있는 동안에는 식사할 때 양고기 음식이 다양하게 나온다. 나는 집에서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함께 만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

고향집에서 즐거운 미슈메이 씨

그리고 한국 김치도 만들어 주었는데, 한국 김치가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저녁에 뉴스를 보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 오북 우한시는 전역 13개 구역으로 연면적 8569.15 제곱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 1400만 명이다. 유동 인구는 510만 명 정도이고 우한은 한강평원 동쪽에 위치한다. 장강 중류 화중지역에 유일한 중국경제센터와 수준 높은 과학기술 현신센터, 그리고 상업무역물류센터와 국제교류센터 4개의 기능이 있는 국가 중심 도시이다. 유동 인구는 500만 명 정도인데 우한 사람들은 설날 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져 있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병에 걸린 사람은 시장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14일이다. 증상이 감기처럼 어떤 사람은 열이 나고 기침을 한다. 힘이 없고 구토도 하며 잠복기에 전염성도 있다. 1월 22일 우한의 비행기와 기차 등 모든 교통이 정지되었다.

예를 들어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씨, 장씨, 박씨가 있다. 이씨가 만난 사람들 중에 우한 접촉자가 있다. 현재 설 때문에 500만 명 이씨가 전국 각지에 산재한다면 찾아내기가 쉽다. 하지만 이씨는 도중(途中)에 자신이 모르는 장씨를 만난 적이 있다. 이씨는 장씨를 모른다. 장씨도 이씨가 우한 사람인 줄 모른다. 이씨는 고향 집에 도착한 후에 박씨를 접촉했다. 그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접촉했는지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격리할 수 있다. 어러운 일은 가장 큰 복병인 장씨이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장씨인 줄도 모른다. 집에서 격리하면서 장씨를 찾아낼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장씨를 찾고나서야 전염병이 비로소 종식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취하는 모든 조치는 장씨의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한 곳에 어러움이 있으면 다방면으로 지원을 한다. 우한도 중국의 다른 성에서 지원을 하러 온다. 과학자들은 밤을 새워 가며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우한은 7일 만에 병원을 하나 지었고 또 하나는 짓고 있다. 지금 중국 정부는 많은 방법을 쓰고 있다.

나는 매우 기쁘게 고향에 가서 설을 쇠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내가 본 세균전 영화와 같아서 무서웠다. 2003년의 바이러스 사건과 17년 후에 발생한 이번 사건과 시간이 거의 같다. 우리는 언제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귀국하는 1월 28일, 공항에서 본 사람들은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검사를 받고 또 검사를 받고 기내 안에서도 검사를 받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한국으로 와서 고향에 있는 식구들이 걱정되서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사서 중국에 있는 고향 집으로 보냈다.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어져서 친정 나들이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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