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농사라고는 하지만 과수 몇 그루와 우리가 먹을 만큼의 채소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 농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입구에 조그마한 간판까지 세우고 보니, 그래도 볼만한 농장이 되었다. 어깨너머로만 보든 농사일과 실제 해보는 농사일은 차이가 크다.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처음으로 보였다. 과수나무는 전정, 퇴비 넣기, 꽃봉오리 솎아내기 등을 하면 수확을 할 수 있지만 채소를 가꾸는 일은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다행히 농고(農高)에서 실습을 충분히 한 자형(姊兄) 덕분에 농사일을 잘 진행할 수 있다. 어느 계절에 어떤 채소를 심어야 하는지, 벌레 잡기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밭을 일구고 퇴비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등 수많은 절차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9월 초에 모종을 심고 100일 정도가 지나면 배추를 수확할 수 있다. 농장에 서리가 내리는 12월 중순이면 적당한 날이다. 배추김치 담그는 날은 잔치집 분위기이다. 마당에 부는 찬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즐겨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일 그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온수를 준비한다. 전정할 때 모아둔 나뭇가지와 둥치를 넣은 아궁이에 활활 타는 불은 그 주변까지 온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방금 추수한 배추를 잘 다듬는 일이 끝나고 하면 소금 절임을 한다. 커다란 통에 배추를 넣고 소금을 잘 스며들게 하고, 한 줄씩 배추를 쌓는다. 우리 집과 형님 댁은 20포기를 하지만 가족이 많은 누님 댁은 100포기 정도를 준비하였다. 집집마다 멀리 있는 자식 몫까지 준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김치 담기이다. 마당에 전등불이 들어오면 저녁식사를 끝낸다. 새벽녘에도 소금 절임이 제대로 되게 하기 위하여 마당의 절임 중인 김치통 속의 배추를 뒤집어서 배추가 잘 절여지게 하는 일도 놓치면 안 된다.

다음날 부산한 아침을 시작한다. 장작불을 다시 살리고 소금 절임한 배추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물기를 제거한다. 충분히 절임 된 배추에 준비하여둔 양념을 넣으면 맛있는 김치가 된다. 가마솥에서 푹 삶은 돼지 수육과 방금 만든 김치 그리고 막걸리와의 조화는 맛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웃집에서도 김치 담기를 하였는지 김치 한 그릇이 왔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올해의 김치 담그기가 끝나고 우리 형제는 각자의 김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올해에도 우리 형제, 가족, 조카 그리고 손자들까지 이 김치로서 행복한 1년간의 식탁이 지속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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