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분교 6학년 김해주

야구와 과학을 좋아하는 해주.
연대도에서 오는 동생 서지훈(유치원)과 함께 

남해의 푸른 물결 우러러 보면
충무공 높은 얼이 가슴에 친다
슬기로운 새날의 꽃은 피리니
동백꽃 발갛게 필 그날이 온다
아 그 이름 영원히 영원히 빛내리 우리 학림교

학림분교 하나뿐인 김해주 학생과 김수환 선생님이 학림도 어르신들 앞에서 랩을 섞어가며 학림분교 교가를 부른다. 학림도에서 나서 학림초등학교를 나온 어르신들 앞에서 부르는 까마득한 후배의 재롱이다. 아들, 손자를 보는 듯 만면에 웃음을 띠며 박수로 장단을 맞추지만 어르신들 가슴에는 쓸쓸한 바람이 지나간다. 이날이 폐교를 앞둔 학림분교의 마지막 수업날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바람이 몹시 불던 지난 12월 27일이었다. 학교 폐교를 아쉬워한 동네 어른들이 음식과 떡을 마련해 환송회를 마련했고, 그 자리에서 까마득한 후배 해주는, 본교인 산양초 학예회 때 선생님과 같이 불러 대인기를 얻었던 교가를 다시 불렀다.

학림분교는 1947년 개교해, 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6일 첫 졸업식을 가진 73년 역사를 이어온 섬 학교다.

이 학교도 처음부터 분교는 아니었다. 학생수가 제법 돼서, 마을 사람들과 동창회가 땅을 희사하고 멋진 콘크리트 2층 건물을 지은 것이 1974년. 그러나 도시화현상으로 점점 섬마을에 학생 수가 적어지자 1992년 산양초등학교 학림분교로 개편됐다.

해주가 졸업하게 되면 학림분교는 ‘전체 909명 졸업’을 역사에 기록하고 사라지게 된다. 졸업생이 없던 해가 많아 해주는 58회 졸업생이다.

지난 1년간 해주는 선생님과 둘이서 공부를 했다. 

지난 1년 동안 해주는 선생님과 둘이서 학교생활을 했다. 둘이서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야구를 하면서. 때로는 경제나 정치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문화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같이 책을 읽는데, 최근에 읽은 ‘코스모스’라는 책은 해주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NASA의 자문 조언자였던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Cosmos)’는 전 세계 60개국, 6억 시청자, 6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최고의 과학 책으로 꼽힌다. 우주와 과학의 원리가 담긴 720쪽에 달하는 책이어서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지만, 선생님과 함께 읽어나가기 때문에 해주는 이 두꺼운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선생님과 1대 1로 받는 수업에 한계는 없다. 해주가 궁금해하는 대로, 해주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수업범위는 확장되고 난이도는 조절된다.

학림분교의 급식은 인근 매점에서 식사를 한다. 학교관리를 해주셨던 주사님은 이날이 마지막 근무일이다. 

교직경력 15년차의 김수환 선생은 올해 2년째 학림분교에서 근무했다.

“작년에는 5학년과 6학년 수업을 한 교실에서 해야 해서 조금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는데, 올해는 해주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6학년이었던 학생은 해주의 셋째누나다. 간혹 다른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스물두살인 큰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해주네 4남매는 학림분교 마지막 역사를 지켜왔다.

“혹시나 전학생이 올까 하는 기대를 갖고 1년을 보냈는데, 결국 폐교가 결정돼 참 아쉽습니다.”

학교 폐교는 향후 6년간 입학 가능한 학생이 없을 때 최종 결정된다. 당장은 학생이 없더라도 입학 대기자가 자라고 있으면 ‘휴교’를 결정하기도 하는데, 학림분교는 지난 10월 폐교예정이 공고됐고, 이의 신청기간을 지나 최종 폐교 결정이 됐다.

이제 학림도에는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14년 동안 학림분교의 학부형이었던 해주 엄마는 거의 1대1 수업이었던 초등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가끔 해주 말을 듣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꼭 교과 과정을 떠나 경제, 정치, 과학 같은 분야에서 굉장히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선생님과 친구삼아 같이 공부하고 책읽고 대화하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해주뿐 아니라 누나들 때도 보면 선생님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특히 청각장애가 있어 말이 늦됐던 셋째는 당시 들어왔던 헌신적인 교사가 저녁까지 집중수업을 하며 말과 글을 가르쳐줬다. 지금은 와우수술을 통해 장애도 극복해 해주누나는 비장애인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다.

선생님이 야구 친구가 되어줘서, 해주는 심심하지 않단다.

해주도 작은 학교가 불편하지 않다.

“나쁜 점은 별로 없어요. 심심한 거? 그래도 선생님이 놀아주시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본교에 가면 재밌기도 하지만 시끄럽기도 하니까.”

조용한 섬마을에서 해주는 학교를 지키는 동네 손자였다.

야구를 좋아하는 해주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가며 야구하는 게 좋다. 교과전담선생님과 뜨개질을 하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다. 1주일에 두 번 학림분교에 들어오는 교과전담 정유진 선생은 과학과 음악, 실과를 가르치며 담임선생님이 다 채워주지 못하는 다른 영역을 채워주었다.

“꿈은… 잘 모르겠어요. 수학과 과학이 재미있지만 다른 것도 재미있는 게 많아서….”

작은 섬에서 태어나 작은 학교를 다녔지만, 학림도의 바다가 태평양과 이어져 있는 것처럼, 해주의 꿈은 거대한 태평양과 잇대어 있다.

산양초 학예회 때 김수환 선생님과 김해주 학생은 랩을 섞은 교가로 인기를 모았다.  
본교와 함께 떠난 수학여행에서 김수환 선생님과 김해주 학생
1주일에 두 번 학림분교에 들어오는 정유진 선생님은 과학과 음악, 실과를 가르친다.

 

해주가 5학년 때 누나와 함께 만든 '미주네집'. 선생님과 함께 톱질을 해가며 만든 이 집에는 실내에 전등까지 설치돼 있다. 
본교 학생들과 부산으로 진로탐험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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