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다. 주산반 학생으로 주산 두기를 열심히 하였다. 주산을 잘 두는 사람이 최고로 보였으며, 주산을 잘 두어서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말쑥한 양복 정장 차림의 은행원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주산 공부를 하였다. 파도가 철썩거리는 선창가 또는 오일장 장터에서도 주산을 두면서 집중력을 향상시켰다. 어서 빨리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대학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도시에 유학하고 있는 대학생이 방학이면 동네에 나타나는데, 까만 제복에 사각 모자까지 쓴 그 모습이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모습에 나를 대입시키곤 하면서 나도 훗날 대학생이 되는 꿈을 꾸었다. 어서 빨리 도시 유학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멋지게 보였던 도시로 유학을 와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녹록하지 못한 현실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버스를 타야하고 반찬도 사서 먹어야 하니 생활비가 필요하였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위하여 돈이 절실히 필요하였고 그 돈을 버는 것이 학업보다도 더 어려웠다. 신문배달, 주간지 팔기, 학생들에게 공부 가르치는 아르바이트 등이 공부보다도 힘들었다. 그리고 꿈에만 그리던 대학생이 되고 보니 그렇게 멋지던 대학생의 폼은 찾을 수 없고, 연일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데모하는 대학생의 모습이 내 앞에 펼쳐졌다. 탱크가 대학 정문을 지키기도 하고 체류가스가 자욱한 거리에서 콧물을 흘리면서 도망을 치기도 하였다. 방황과 괴로움이 겹쳐 몸서리치는 날도 있었다. 솔직히 어서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싶었다.

선박 지붕에서 실험을 하기 위하여 급히 사다리를 오르다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서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요즘 하고 있는 농장의 전정 작업도 사다리 타기가 필수 장비이다. 한 칸씩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목적한 일을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니, 나의 꿈도 한 칸씩의 사다리 타기처럼 올라가야 하였다. 은행원, 대학생, 좋은 회사의 취업도 어서 빨리 이루어지는 꿈은 없었다. 한 단계씩 사다리를 오르듯 현재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음을 도모하여야 하였다. 건너뛰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일은 없었다. 한 단계씩 차근히 밟아가야만 알찬 성공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세월이 많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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