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나의 고향은 경남 하동이다. 할머님의 치맛자락을 연상하는 지리산 자락이 역사의 아픔도 포용하면서 그곳을 지키고 있다. 지리산 고단봉을 지나고 산복도로를 내려오면 구례 화엄사가 나타나고 조금 지나면 섬진강변을 만나게 된다. 강은 천천히 흐르면서 간혹은 연인들의 자전거 타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하동의 쌍계사를 만나게 된다. 하동읍에서 우리집 송문리까지의 고불고불한 신작로는 그 자체가 시(詩)가 되고 노래가 되는 듯하다. 밀짚모자 쓰고 천천히 걷고 싶은 길이다.

고향집인 신기 부락에서 10리길(4km)을 걸으면 노량이다. 면소재지로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하였다. 그곳의 노량초등학교가 나의 모교이다.

노량초등학교 운동장 너머로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품은 정원 같은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석양이 아름다운 그곳이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노량초등학교의 강당 앞면의 노량해전의 그림을 보며 우리는 그분의 애국정신을 배우면서 자랐다. 소풍 때면 통통배를 타고 남해노량의 충렬사를 참배하고 그곳에서 도시락 먹고 지낸 기억이 생생하다. 장군께서 순국하고 유해를 잠시 안치한 곳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그곳은 애국정신을 배우는 첫 걸음이었다. 여수에서 오는 여객선은 노량을 거쳐 삼천포, 충무 그리고 부산이 종점으로 한려수도의 유일한 대중교통망이었다. 충무에 들어서면 손에 닿을 듯 운하교를 만난다. 충무 항구에 당도하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충무김밥을 파는 할머님들을 만났고, 배는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 충무김밥의 향기만으로 맛을 느끼면서 배고픔을 참았던 날이 엊그제 같다.

세월은 쏜살같다. 충무는 통영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내가 부산과 창원을 거쳐 현재의 통영에 온 것도 벌써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대승하고 국가를 지킨 한산대첩의 이곳에서 나는 인생 후반부를 지내고 있다.

충무공은 나의 고향, 하동의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분이 환생하였다면 다시 통영으로 와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한산대첩에서 적군을 무찌르듯, 지금의 우리나라를 더욱 강하게 지켜주시지 않겠는가? 노량해전의 그곳에서 태어나서 충무공의 정신을 배웠고, 지금은 통영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충무공의 환생의 길을 따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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