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농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초저녁부터 일기 시작하는 한기(寒氣)는 야심한 밤이면 코끝을 지나면서 잠을 설치게 한다. 마트에서 스폰지 두루마리 문풍지를 샀다. 테이프를 떼어내면 접착제가 있어서 간단히 문풍지 작업을 할 수 있다. 나는 가위로 문풍지를 자르고 아내는 문풍지를 붙였다. 이제는 이 겨울의 추위를 지내는데 별 문제가 없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이제 우리 농장의 따뜻한 겨울맞이 준비를 마쳤다.

아버지는 온 가족이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셨다. 집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지난밤의 안녕을 챙기고, 본채에 주무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안방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을 다시 지피시고는 새벽일을 나가셨다. 우리가 잠을 깨고, 아침 식사 때가 되면, 아버지는 지게에 나무를 가득 지고 땀이 흠뻑 젖은 얼굴로 마당에 짐을 내려 놓으셨다.

찬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초겨울이면 어김없이 문풍지 작업을 하였다. 아버지는 한지를 곱게 잘라서 문풍지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밀가루 풀을 나는 문풍지에 바르고 아버지는 장석 쪽의 여닫이부터 문풍지를 붙였다. 지난 여름날에 생긴 문틈, 구멍이 나거나 조금 찢어진 곳도 하나하나 찾아서 막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군불을 때서 방바닥의 온기는 어떤지 또는 방안 공기는 따뜻한지를 챙기면서 우리집의 겨울나기는 시작되었다.

삭풍이 부는 농촌의 겨울밤은 일찍 찾아온다. 아버지는 아궁이 저 깊숙한 곳으로 군불을 넣고 호롱불이 가물거리는 방안으로 우리를 불렀다. 동치미를 곁들인 고구마, 밤, 홍시 등의 군것질의 시간도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랑채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막내인 내가 거처하는 곳이다. 토담집의 구수한 향기가 가득한 그곳의 가장 따뜻한 아랫목은 내 차지였다. 아버지는 문 옆의 추운 곳에서 주무셨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오시고, 내가 자는 새벽에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는 그렇게 지내셨다.

냉기를 품은 겨울바람이 찾아오는 요즘이면 뒷산 능선에서 땔감을 준비하시고, 늦은 밤 아궁이 안으로 군불을 넣어 주시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문풍지를 발라서 외풍을 막아 주시고, 따뜻한 토담집 사랑채에서 단잠을 들게 하여 주신 그분이 오늘은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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