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고향 선산 아래에 자리 잡은 위선재(慰先齋)에서 시사를 지냈다. 나는 진양정씨 은열공파 26세손이며, 6대조부터 모시는 시제에 참석하는 것이 1년에 조상을 대 하는 한 번의 기회이다.

6대조 윗대 조상을 모시는 시사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참석한 적이 없다. 이 곳 제각(祭閣)은 아버님의 혼신이 들어 있는 곳이다.

나의 유년시절 아버님께서 물레방앗간 을 매입하여 리모델링하던 과정을 어렴 풋하게 기억한다.

이곳 뒤쪽의 논에서 모내기 하고, 보리 밭을 일군 추억이 서려 있기도 하다. 아 버님은 이곳을 위선재로 명명하고 손수 명판을 쓰시고 전각하였고, 지금도 그 명 판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산소가 인근에 있는 것도 자주 이곳을 찾게 되는 연유이 기도 하다. 제각 마루에서 남쪽을 바라보 면 나지막한 산과 한려수도의 섬들이 함 께 어울려 살고 있다.

뒤쪽으로는 금오산 기슭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금정사가 앉아 있다. 뒷산의 오른쪽에는 어릴적 소에게 풀을 먹이러 다닌 곳으로서 갖가지 산나 물을 캐던 곳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걸음 걸이한 발자국이 지금도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일가친지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차림하고, 축문도 준비 하였다. 동생인지, 형님인지 간혹은 헷갈 리기도 하여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 시간 이 흘렀다.

대문을 활짝 열고, 마루에 올라오는 돌 계단도 조심스럽게 챙기면서 조상이 오 시고 음식을 드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집안 형님의 엄숙한 제사 절차 지도에 의하여 열심히 절하고, 술을 올리고 음복 하는 시간도 가졌다.

1년에 한번 일가친지와의 만남 그리 고 조상을 생각하는 시간은 이렇게 가을 의 정취와 더불어서 흘렀다.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는 하얀 비닐에 묶인 볏단들이 듬성듬성 추수 끝난 논을 지키며, 이곳을 오가는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도 활짝 열려 있는 아래채의 대문 을 보았다. 이제 시사를 마쳤으니, 나의 할아버니, 할머니 그리고 윗대 조상님들 이 다시 그분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이 된 것이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았 다.

그리고 뭉게구름사이로 햇살이 환하 게 비치었다. 저곳으로 조상님들이 돌아 가시나 보다. 세월은 계속 흘러갈 것이다. 나도 100년 후 쯤에는 시사 때를 기다렸 다가 1년에 한 번 일가친지도 만나고, 자 식, 손자, 증손자 그리고 고손자들을 만나 러 제각으로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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