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작품이 더 빛나도록, 그들의 전시가 더 아름답도록
그들의 작품이 더 빛나도록, 그들의 전시가 더 아름답도록
  •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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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옻칠미술관 전시기획담당 김주현
김주현 전시기획담당

‘2019 경남박물관인대회’에서 통영옻칠미술관의 김주현 전시기획담당(37)이 ‘올해의 우수 활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경남박물관인대회가 열린 지난 12일 합천한의학박물관에서에서 있었다.

올해 9번째를 맞는 경남박물관인대회는 매년 경남의 박물관·미술관 종사자들이 연합전시, 워크숍, 축하공연, 체험부스 등을 마련하여 경남도의 문화예술 발전과 화합을 결의하는 축제의 장이다.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은 “뛰어난 회화능력과 현장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단한 기획력으로 국제규모의 전시 및 행사, 해외전시기획업무를 진행하여 한국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교류의 기회를 확장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 인재”라며 김주현 씨를 추천했다.

도록을 제작하며 같이 참여한 전시들

주현 씨가 함께하게 된 2016년 이후의 팜플렛을 보여주며, “이 팜플렛만 모아도 작품이 하나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그의 실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주현 씨는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작가 활동을 했던 인재다. 미술에 대한 안목과 경험,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해외전시가 많은 통영옻칠미술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전시기획 부문의 상은 다른 분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상입니다. 결코 저 혼자 잘해서 받을 수 있는 상은 아니지요.”

그는 수상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일면 그의 말도 옳다. 전시기획이라는 일 자체가 작가와 다양한 협력기관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전시의 경우 대사관, 해외교민단체, 운송업체, 보험업체, 홍보물 제작업체, 언론기관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저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여러 단체가 원활하게 협조하도록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뿐입니다. 서로 협조가 잘 되면 어쩌면 큰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죠.”

전시기획 부문의 우수활동상을 받았다. 

전시기획자의 능력은 분쟁이 생겼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흔한 문제로는 책임 소지를 따져야 하는 작품 파손 문제나 구두계약이나 불공정 계약 같은 데서 발생한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후 작가로서 활동을 해본 경험이 그에게는 이런 문제를 예방하는 약이 됐다.

“제가 졸업할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오로지 좋은 작품 제작만 가르쳤어요. 전시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선배를 통해서나 직접 몸을 부딪쳐 가며 터득해야 했지요.”

어떤 작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계약은 어떻게 할지가 주먹구구식으로 되던 때, 때로는 마음도 상해보고 관련기관의 협조도 받지 못하면서 겪은 경험들이 체계적인 전시기획의 바탕이 됐다.

02학번인 그는 마지막 예술 홍대의 수혜자다. 미술대학을 가장 간판으로 내건 홍대 주변은 몇 걸음 가지 않아 예술적이고 독특한 작업실을 만날 수 있는 예술의 거리였다. 유리창 너머로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작은 다방이나 주점에서 예술을 논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을 수도 있는 낭만이 있었다.

주현 씨와 같은 미술학도들은 학교에서뿐 아니라 교문 밖의 작가들에게서 더 큰 예술적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클럽과 술집 많아지더니, 홍대 주변은 알아주는 유흥가로 변했다. 상권이 형성되자 작업실의 월세가 올라갔고, 가난한 작가들은 홍대 거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이 많이 있을 때 학교를 다닐 수 있어서 행운이었죠. 주변에서 만나고 알게 됐던 작가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는 자신만의 회화와 설치미술을 했다. 1~2년 뒤에는 독일로 건너가, 작가들의 공동 커뮤니티에 소속돼 여러 가지 창작 작업을 했다. 독일은 스튜디오 대여나 전시 같은 측면에서 외국 작가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나라였다. 그는 3년 반 동안 국제도시 베를린에서 살았다.

그의 귀국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할 계획이었던 그는 2016년 3월부터 옻칠미술관 식구가 됐다. 고향이란 늘 그렇게 예술가를 안아주는 곳이므로. 더구나 그 고향이 무한한 예술혼을 품고 있는 통영이므로.

“동호동 남망산 밑에서 자랐어요. 통초, 충무중, 통고를 나왔죠. 옻칠에 대한 이해는 관광객 수준이었어요. 일을 진행하고 작가들을 대하며 배우는 중입니다.”

해외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는 한국문화의 기반으로서의 옻칠예술을 만났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적인 전시회’라고만 흘려보게 되는 옻칠작품들이 외국인들 앞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이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된 놀라운 예술이 된다.

“그들의 호기심, 그들의 감흥을 피드백으로 받으면 다른 문화권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체감이 다르지요.”

그는 옻칠미술이 수도권의 시선으로 지방 관광 목록 중 하나로만 보이지 않길 바란다. 문화라는 것이 집단에서 공동된 양식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밖에서 보는 시선만 부각하면 옻칠예술의 폭이 너무 작아지고 만다.

“일상에서 즐기고 갖고 있던 소중한 문화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우리 문화를 현대에 이어가는 작가들의 뒤에 숨어, 그들의 작품이 더 빛나도록, 그들의 전시가 더 아름답도록 레드카펫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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