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무형문화재-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

“조선은 모자의 왕국이다.”(프랑스 학자 샤를르 바라)
“조선은 모자 발명국이다.”(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

개항기 조선에 발을 디딘 외국인들은 조선 양반들의 갓을 보고 ‘모자의 나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신분에 따라, 장소와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다양한 모자를 신기하게 여긴 것이다.

전 세계 1억5천만 명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 ‘킹덤’이 방영됐을 때도 외국인들은 조선의 모자에 관심을 보였다.

양반의 상징이었던 갓

“조선 사람들은 실내에서 신을 벗고 모자를 쓴다.”

우리 안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이 모습이, 실내에 들어갈 때 모자를 벗는 서양인의 눈에는 낯설었던 것이다.

양반이 집에 있을 때 쓰는 정자관, 관복과 함께 쓰는 사모, 신분 낮은 백성이 쓰던 패랭이 등등 그러고 보니 조선은 모자가 다양한 나라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모자는 ‘흑립’이라 불리는 조선 갓.

조선시대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갓은 양반의 위엄과 멋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관이었다.

갓의 최고 명산지였던 통영에서는 조선시대 말기만 해도 장날마다 5백여 개씩 갓이 거래됐지만, 세태의 변천에 따라 아무도 갓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됐다.

정춘모 선생의 갓 일 작품

하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정춘모 기능보유자는 온 가족과 함께 통영갓을 지키고 있다.

“통영 갓일은 말총을 이용해서 갓의 윗부분을 만드는 총모자일과 대나무를 얇게 뽑아 엮어서 갓의 넓은 밑부분을 만드는 양태일, 총모자와 양태를 모아 51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하는 입자일 세 가지가 합쳐져야 완성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갓일의 기능보유자는 ‘총모자장’, ‘입자장’, ‘양태장’의 세 분야로 나뉜다. 정춘모 기능보유자는 ‘입자장’의 인간문화재다.

정춘모 선생이 통영갓을 만난 건 대구의 갓방에서다. 원래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예천에서 3대째 갓방을 하던 이종국에게서 갓일을 처음 배운 정춘모 선생은 스무 살 때 대구에서 가장 큰 ‘박영의 갓방’에서 일하게 됐다. 이곳에서 만난 스승들이 통영의 장인이었던 김봉주 옹과 고재구 옹이다.

정춘모 선생은 고재구 옹에게서는 총모자 일을, 김봉주 옹에게서는 입자장 일을 배우고, 거제도에 살던 모만환 보유자에게서 양태장일을 배웠다. 이들은 모두 인간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1964년, 1대 기능보유자가 됐다.

그해 정춘모 선생은 대구 달성공원 입구에 ‘입자공업사’라는 갓방을 차렸다. 그러나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갓은 생활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1973년 스승인 김봉주 보유자가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오게 되자, 정춘모 선생도 스승을 따라 통영으로 왔다.

왼쪽부터 정춘모 기능보유자의 스승인 총모자장 고재구, 입자장 김봉주, 양태장 모만환 기능보유자.

갓으로 생업을 삼는 시대가 지고 있었다. 스승인 김봉주 옹조차 외국관광객과 시골노인들의 주문에 따라 매달 한두 개씩의 갓을 만드는 게 고작, 갓 제조기술을 전수할 후계자도 없는 시절이 도래했다.

그러나 정춘모 선생은 1974년 갓일 전수장학생으로 입문, 본격적인 전통문화 계승의 길에 나섰다.

도국희 양태장 우수이수자 

“제가 통영의 장인들에게 계속 권했습니다. 갓은 세 가지 과정이 합해져야 완성되는 일이니 각각 분야에서 전수자가 한 명씩은 있어야 한다고요. 아무도 제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정춘모 선생은 1991년에 입자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없어, 결국 총모자장과 양태장은 제주도의 장인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정말 안타까운 건, 우리 기술만 밖으로 나갔지, 20년 동안 갓이 만들어지지 않는 겁니다. 국가에서는 이렇게라도 보존하겠다고 양태장을 임명했건만, 양태만 가지고 갓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더구나 통영갓은 양태를 잘 만들어서 ‘통양’이라고 불릴 만큼 양태가 특징이었다. 그렇게 목청껏 외쳤는데도 아무도 듣지 않았던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언제까지 탓만 할 수는 없었다. 공식적으로 ‘입자장’이지만, 이미 인간문화재 스승들로부터 모든 기술을 전수받은 정춘모 선생은 “우리 가족이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지금 정춘모 선생의 가족은 모두 통영갓 장인이다. 아내인 도국희 여사는 양태장의 우수이수자이고, 아들 정한수 씨는 입자장 조교, 며느리 이금화 씨는 입자장 전수자다.

용남면에서 살고 있는 정춘모 선생은 통영갓의 전수와 홍보를 위해 경기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정춘모 선생의 손에서, 통제영 12공방의 하나였던 ‘입자방’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금화 입자장 전수자
온가족이 통영 갓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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