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심성은 고운 춤사위를 만들고
아름다운 심성은 고운 춤사위를 만들고
  •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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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 통영지회 정서완 지부장

참 이상하죠? 동작이 아무리 완벽하고 예뻐도 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의 춤은 어딘가 모르게 표독합니다. 내 마음의 품격이 표정을 통해 춤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심성을 갖춰야 제대로 된 작품이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통영 국악협회 정서완 지부장(56)은 무희의 춤동작에서 심성과 인격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인품과 심성이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리 기교가 좋아도 춤의 완성미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춤의 경지에 오른 이들에게서 인격의 경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서완 지부장은 마음을 평온하게 갖는 것, 잘못을 깨달을 때는 즉시 사과하는 것, 삶에 감사하는 것, 다른 사람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 같은 내적 성숙을, 춤사위 익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무용은 특히 서로가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춤을 추는 군무가 많잖아요. 표정, 눈빛, 손짓에서 전인격의 흐름이 나타납니다.”

정갈한 마음으로 춤을 추듯, 정서완 지부장은 삶속에서도 화합과 성숙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국악협회가 통영 예술의 한 축을 감당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배려와 조화, 인격의 성숙 같은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통영국악협회는 통영예총 산하 8개 지부 중에서 가장 늦은 2017년에 처음 발족됐다. 통영이 전통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문화예술의 고장인 걸 생각하면 많이 늦은 출발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악협회는 통영시의 각종 문화예술행사에 기여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서완 지부장은 북신동에서 예일국악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무용과 가야금 같은 악기, 노래를 모두 가르치는 가무악(歌舞樂) 학원이다.

이 학원은 원래 진주 한량무의 기능보유자인 정행금 선생(87)이 운영하던 민속예술교습소였다. 정행금 선생은 정서완 지부장의 고모다.

손짓 하나를 해도 어떻게 그렇게 멋있는지. 어린 눈에도 고모님의 춤선이 참 고와보였어요.”

30년 넘게 차이 나는 어린 조카의 눈에 경남 최고의 춤꾼인 고모는 한 떨기 꽃 같기도 하고 한 마리 나비 같기도 했다. 집안 어른들은 고모의 춤을 따라하는 어린 서완에게서 재능을 보았다.

춤추는 게 참 좋았어요. 동네에 극단이 들어와 공연을 하면 학교도 빼먹고 푹 빠져서 보곤 했지요.”

예닐곱 살 때부터 정서완 지부장은 통영에 하나뿐인 자매무용학원에 다니면서 춤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꿈을 밀어줄 수 없는 가정형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진주에서 활동하던 고모가 통영에도 무용학원을 차렸다. 꿈 많은 소녀 서완은 학원의 온갖 심부름을 하면서 춤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상업계였던 충렬여고로 진학하게 되면서, 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오빠가 선택해 준 상고 진학으로 인해 서완은 더 내성적인 여학생이 됐다.

나 혼자라도 대학에 가겠어!”

조용하고 말없던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완은 발칙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리고 1년 동안의 도전 끝에 동덕여대 체육교육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서울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혼자 자취를 하면서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해 내야 했다. 당시 공연 문화의 중심이었던 워커힐호텔에서 공연하는 것이 대학생 서완의 아르바이트였다.

부채춤, 상고무, 5고무, 설장구단체로 추는 춤을 정말 너무 많이 췄어요.”

때로는 고되고 힘들기도 했지만, 무대에서 서로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고 춤을 추면서, 젊은날의 서완은 자신의 춤을 만들어갔다.

정서완 지부장이 다시 통영에 온 건 결혼하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다. 고향은 언제나처럼 타향살이에 지친 딸을 따뜻하게 품어줬다.

그때까지도 고모 정행금 기능보유자는 통영과 진주를 오가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었다. 정서완 지부장은 고모의 통영 학원을 이어받아 예일국악연구소를 열었다. 가야금을 비롯한 국악기와 소리, 춤을 다 가르친다.

가야금은 국악의 꽃입니다.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뿐 아니라 발림*까지 더하면 가무악(歌舞樂)이 다 들어간 종합예술이 됩니다. 가야금을 치는 아이들은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잘합니다.”

가야금이 오감을 다 자극하기 때문에 두뇌발달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학설이다. 실제로 가까운 충렬초등학교에 학생들이 많았을 적엔 학교에서 가야금반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가야금반 아이들은 대개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가 작아지고 학생활동이 뮤지컬로 전환되면서 어린 제자들이 없어 아쉽습니다.”

국악협회를 이끌어가면서도 가장 아쉬운 건 후학 양성이다. 젊은이들이 우리 음악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서양식 밴드나 뮤지컬이 더 친숙하다.

국악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알겠습니다.”

정서완 국악협회 통영지부장은 오늘 내 마음가짐 하나, 내 춤선 하나가 국악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진중하게 무대를 준비한다.

*발림: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하여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몸짓과 손짓으로 나타내는 동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