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누비 위에 행복을 그립니다
포근한 누비 위에 행복을 그립니다
  •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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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회화작가 김선경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김선경 작가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김선경 작가

얄궂게도, 고통이라는 양분은 더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기 위한 필연조건일까? 진주조개의 눈물이 더 탐스런 진주를 키워내는 것처럼, 실연의 아픔이 온갖 감미로운 시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때로 절망의 시간은 예술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오는 27일 첫 개인전을 여는 김선경 작가는 지난봄에 찾아온 시련의 시간 동안 행자가 스님이 되기 위해 수행하듯이작품을 만들며, 어려움을 예술로 치환했다.

지난봄, 김선경 작가의 남편인 서필언 전 행안부 차관은 국회의원보궐선거에 나서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유력후보였고, 그만큼 열심히 임했던 경선이었기에 좌절은 컸다.

남편 서필언 전 행안부 차관과 함께.

남편이 꺾일 때 굉장히 아팠어요. 저희가 너무 순진했는지도 모르지요. 3~4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무렵 김선경 작가는 장을 보러 갔다가 면봉을 보고 문득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미술적 창작의욕이 깊은 마음의 벽을 뚫고 되살아난 것이다.

꽂고 칠하고 꽂고 칠하고, 작품을 만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손에 피가 나도록 계속 작업만 했지요.”

마음에 치유를 가져다준 면봉 1만 개를 꽂아 만든 작품을 비롯해, 김선경 작가는 2달 동안 누비, 붓을 품다시리즈의 10여 개 작품을 쏟아냈다. ‘나한테 이게 있었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 언 땅을 밀어내고 고개를 드는 새싹처럼, 오랜 꿈이 공직자의 아내로 살아온 30여 년 세월을 비집고 미어져 나왔다.

김선경 작가는 1979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인재다. 이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대한미협, 서울미협 회원으로 여러 차례 단체전시회에도 참가했었다.

당시만 해도 이화여대는 기혼자에 대해 담이 높았다. 대학원이었는데도 김선경 작가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더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첫월급 19만원으로 시작한 빠듯한 공직자의 살림살이도 작품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작용했다. 아이들이 성장할 때 김선경 작가는 집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살림을 도왔다.

김선경 작가에게 치유를 가져다준, 면봉 만 개를 꽂아 만든 작품

나이 예순이 되어 첫 개인전을 열며, 그는 지난 시간들을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고, 지속적인 창작혼을 불태우지 못했던 것이라고 돌아본다. 그러다 지난봄에 갖게 된 아픔의 시간을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것이라며 감사한다.

대학 때부터 바느질을 했어요. 광목천에 솜을 넣고 바느질로 누비고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지요.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림 따라 누비기도 하고, 천을 퍼즐 모양으로 잘라 누벼놓은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추상화를 전공한 김 작가가 화면의 질감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누비였다. 일일이 손바느질로 만든 누비 위에 원하는 이미지와 색으로 작업을 완성하면 요철이 있는 질감이 얻어졌다. 주위에서는 김선경 작가의 작품을 독특하고 장식적이며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김선경 작가는 천을 누벼 그림을 그린다. 

김선경 작가에게 통영은 그저 남편의 고향이었다. 어린시절을 통영에서 보낸 남편은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그 기억은 아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 작가가 통영과 만난 건 남편이 정년퇴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이다.

통영에 오니 온통 누비가방, 누비이불, 누비지갑. 통영에 와서야 그저 바느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제 작품이 누비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누비에 그림을 그리니, ‘누비회화라고 해야겠죠.”

누비 기법뿐 아니라 평소 즐겨 그리던 물결이 가득한 파도 그림도, 잔잔하고 다정한 통영바다를 닮아 있었다. 마치 예견된 운명처럼 통영과 조우한 것이다.

김선경 작가의 작품에는 행복과 부귀, 장수, 다산 등 전통적으로 복을 상징하는 모란, , 붕어, 십장생, 초록 사과 같은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천이라는 소재도 따뜻한데, 그림의 내용도 포근함이 있다.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첫째는 제가 행복하고, 보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림. 내가 즐겁게 그려야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을까요?”

이번 전시회는 남편이 먼저 권했다.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에서만 30여 년. 바깥일에 마음을 쏟느라 아내의 재능이 집안에 묻히는 것을 보면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함 때문이리라.

미수동 갤러리손에서 통영시민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김선경 작가의 마음은 설레는 봄빛이다.

김선경 작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83년 졸업
이화여자대학원 수료
2008-2012 이서전
2008 7983
2010 녹미회전
2010 중심전
2011 자연+생명 +소리전 (갤러리 심상)
2011 COEX. DECO아트페어
2012 Reformation(갤러리 가이아)
현재 대한 미협, 서울미협, 중구미협, 통영 화우회 회원

남편의 고향으로만 생각했던 통영이 김선경 작가에게는 운명이었을까.<br>누비, 파도, 물고기... 대학 때부터 즐겨 쓰던 문양과 기법이 통영과 일맥상통한다.
남편의 고향으로만 생각했던 통영이 김선경 작가에게는 운명이었을까.
누비, 파도, 물고기... 대학 때부터 즐겨 쓰던 문양과 기법이 통영과 일맥상통한다.
왼쪽은 손녀의 스티커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고, 오른쪽은 솜방망이를 일일이 만들어 꽂아 만든 작품이다.<br>
왼쪽은 손녀의 스티커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고, 오른쪽은 솜방망이를 일일이 만들어 꽂아 만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