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숲지기 배익천 작가

아동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배익천 작가

1974년, 동화 ‘달무리’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배익천(70) 작가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동화작가다.

등단할 당시 배익천 작가는 안동사범대학을 나와 작은 시골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7년 교사생활을 끝으로 배익천 작가는 1979년 부산MBC에서 창간한 ‘어린이문예’ 편집장이 되어 30년 동안 부산MBC의 편집주간과 출판담당 부국장으로 일했다.

동시동화 나무를 가꾸느라 농사꾼이 다 됐다.

배익천 작가가 고성에 둥지를 튼 건 마흔을 갓 넘긴 1990년이다. 강과 대숲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던 그는 어느 날 신문에 난 ‘고성 촌집’을 보러왔다가 덜컥 사버렸다.

“시내를 벗어나니 숲이 우거지고 온 들판에 자운영이 피어 있었어요. 대숲이 있는 아늑한 마을에 계곡이 흘러내리고 꿩이 꺼병이를 거느리고 거닐고 있었지요.”

고성의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대책도 없이 300평 되는 촌집을 사버린 그는, 10년 동안 그 빚을 갚아야 했지만 행복했다. 직장 때문에 주중에는 부산에 살아야했던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고성의 자연은 그의 동화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비탈 위의 작은 집’이 KBS 단편드라마로 방영된 것이나 해강아동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을 받은 것은 1980년대 말의 일이지만, 대한민국아동문학상, 박홍근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은 모두 고성을 오가며 지은 책으로 받은 상이다.

‘꿀벌의 친구’가 MBC TV 만화영화로, ‘꽃씨를 먹은 꽃게’가 KBS TV에서 드라마로, ‘해가 세 번 뜨는 산’이 EBS 라디오 단편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모두 1990년대 초중반이다. 1997년에는 그의 동화 ‘왕거미와 산누에’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을 모두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성격 덕에 그는 낯선 타향인 고성에 아무 저항 없이 스며들었다. 7가구밖에 되지 않는 마을 어르신들은 주말마다 찾아와 부지런히 일하는 젊은 새 이웃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젊은 이웃은 담배며 과일을 선물하며 다가왔고, 명절이 되면 꼭 인사를 하고 세뱃돈을 챙겨 드렸다.

작가들에게 나무를 한 그루씩 나눠주는 동동숲

“어느 핸가는 옆집 아저씨가 쌀을 못 팔았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부산으로 실어오라고 했지요.”

트럭으로 실어온 고성 촌쌀은 부산MBC 직원들의 손에서 금세 동났다. 쌀 한 가마니 값의 토종꿀도 수년 동안 팔아줬다.

이렇게 고성 사람이 된 배익천 작가로 인해 고성 촌집은 조금씩 아동문학가들의 아지트가 돼 갔다. 사람을 포용하는 그의 성격과 아동문학계에서의 그의 입지가 한몫했다.

그런 고성이 10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국 아동문학의 중심지가 됐다. 오랜 친구인 부산 ‘방파제 횟집’의 홍종관 대표가 배익천 선생의 이름으로 1만 평 규모의 산을 사서 ‘동화나무의 숲’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횟집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인간미에 반해 각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작은 횟집이었던 방파제는 배익천 작가로 인해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부산 명소로 바뀌어 갔고, 아동문학의 ‘아’ 자도 모르던 주인 부부는 배익천 작가가 다리가 되어 만난 아동문학가들을 사랑하다가 아동문학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처음에 이 숲은 동화작가들에게 나무 한 그루씩을 나눠주어 가꾸게 하던 ‘동화나무의 숲’이었다. 2009년 봄 고(故)유경환 시인이 내던 ‘열린아동문학’을 배익천 작가가 이어받아 내게 되면서 ‘동시동화나무의 숲(동동숲)’으로 이름을 바꾸고, 2010년 ‘열린아동문학관’을 지었다.

배익천 작가와의 인연으로 인해 아동문학계의 대부가 된 홍종관, 박미숙 부부와 함께.

한국 아동문학계의 큰별이었던 고(故)유경환 시인은 병상에서 “배익천 선생에게 열린아동문학을 맡아 달라고 해주시오.”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커다란 숙제 앞에서, 이미 아동문학계의 후원자가 돼 있던 홍종관 대표는 “내가 도와주꼬마.” 하며 발행인이 됐다.

홍종관 발행인과 아내 박미숙 여사는 계간지의 편집은 전적으로 배익천 선생에게 맡기면서, 작가들을 위한 잔치와 따뜻한 원고료를 마련하며 열린아동문학을 키웠다. 참기름, 감말랭이, 고추장, 멸치, 마늘 등이 원고료로 지급됐고, 책이 나올 때마다 작가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칫상을 차려줬다. 이런 따뜻한 마음이 통해, 열린아동문학은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들이 ‘가장 글을 싣고 싶어하는 문예지’가 됐다.

지금 동동숲에서는 봄, 가을에 열린아동문학에 글을 실은 필자들을 초대해 ‘필자한마당잔치’를 벌인다. 또 1년 동안 실린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선정, 그 작가에게 열린아동문학상을 시상한다. 발행인 부부의 지인들과 이웃 대가면민들이 쌀, 마늘, 양파, 매실 등을 기부해, 40여 종의 부상이 상금 외로 따르는 재미있는 상이다.

동동숲에서 열린 독서캠프에서 '진주성을 나는 비차'의 작가
박형섭 선생이 열강중이다.

시상식 때는 전국의 아동문학가 2~300명이 1박2일, 어떤 사람은 2박 3일 동안 동동숲에 머물며 서로의 건필을 응원한다.

사단법인으로 바뀐 2017년부터는 숲속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고성뿐 아니라, 진주, 창원, 통영, 거제의 어린이들을 모아 독서캠프를 열기도 한다.

어느새 고희, 혹시 시간이 더 지나면 몸으로 쓰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배익천 작가의 마음은 바쁘다. 1년 내내 꽃이 피는 숲길을 만들어 더 많은 나무를 작가들에게 나눠주려고, 이 여름에도 동동숲에 길을 닦고 나무를 심는다.

2011년 고성공룡엑스포 홍보대사를 맡았던 배익천 작가는 오는 2020년 공룡엑스포에서도 대한민국의 모든 공룡 동화를 모아 어린이들과 만날 작정이다.

“동시도서관, 동화 도서관, 공룡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모든 어린이책이 이 도서관에 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에 꼭 다녀가는 숲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배익천 작가는 오늘도 숲에 동심 가득한 나무를 심는다.

오래된 글 친구인 손기원 작가는 교장 퇴임 후 경주의 집보다 고성 동동숲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아동문학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세 사람이 담소를 나눈다.
어린이 책이 가득한 동동숲 도서관
"누구나 와서 정담을 나누세요" 동동숲 무인카페
먼곳에서 온 강사님들이 쉬어가는 오두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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