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주 집 김연수 할머니
7공주 집 김연수 할머니
  • 김선정 기자/채록
  • 승인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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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면 죽도를 말한다

나가 한이 많다. 용초에서 스물한 살에 이 섬에 시집 와가, 아들을 서이나 놓았는데 다 잃었다. 나믄 죽고, 나믄 죽고 그래가 아들 서이를 다 잃었지.

둘이는 낳자마자 죽고, 하나는 세 살 먹어 돌아댕기다가 죽어삐고…. 그래 고마, 사는 기 사는 기 아이라.

밑으로 아들 놓을 끼라고 자꾸 놓았는데, 일곱꺼정 딸만 놓았어. 아만 나믄 고마 초상난기라. 밥도 몬 얻어먹고. 남편은 술 먹고 술집에 가 살고.

젊어서는 딸이라도 있은께 몰르겠더마는, 나이가 든께, 죽을 때가 된께 자꼬 생각이 나. 벌써루 팔십다섯 아이가.

서이나 낳았는데 왜 몬 키웠노, 왜 몬 키웠노…. 하나이라도 키웠시면 이리 한이 맺히지는 않을 거 아이가….

다리 수술하느라 병원 입원해본께, 옆에 아들, 메누리가 와서 어마이를 구완을 하고 병원에 델꼬댕기더마는.

내도 딸이 하긴 하지마는 한쪽은 서운는기라. 넘의 식구다 싶어서. 사우도 있은께. 아들은 내 식구거든. 그게 서러버서 쏙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어. 우리 아도 살았시믄 시방 저럴 꺼 아인가….

나 시집올 때는 여를 ‘돈섬’이라 했어. 집집마다 죄 배가 있은께, 섬을 뺑뺑 돌아가매 배를 담뿍 댔지. 배 댈 데가 없어서 싸움도 싸왔다. 여자들은 농사짓고, 남자들은 배 타고 고기 잡아 살았다.

저녁때는 배 들온다고 집집마다 난리라. 일본에서 큰 무역선이 딱 들와 저 바다 앞에 대기하고 있거든. 그럼 고마, 배에서 고기를 내림서 바로 일본 배에 싣는 기라. 고기도 많이 낚았지만서도 판로가 좋은께나 돈이 흔했지.

당시에는 해녀도 많았어. 해녀선 하는 사람이 제주서 해녀를 모집하는 기라. 한 채마도 여남은 명씩 해녀들을 싣거든. 정월이나 2월에 오믄 8월이나 될 때까지 여 살믄서 물질을 했지. 해녀선이 다섯 채나 들와 있었으니, 올매나 많았노? 우리 집도 저 작은방도 세를 주고, 아랫방도 세를 줬다. 해마도.

그때가 우리 아아들 국민핵교 다닐 때라. 핵교도 북적북적했제. 큰것들은 통학배 태워 본섬(한산도)으로 중핵교 보내고, 더 큰것들은 충무서 자취하메 고등핵교 보내고 그랬지. 고등핵교 나온 것도 있고, 못 나온 것도 있고 그렇다. 많아논께.

핵교를 지대로 몬 보내서 그게 미안쿠마는. 그래도 머리 있는 놈은 즈그가 알아서 다 대학도 가고 카드라. 그게 고맙지.

우리 막냉이가 핵교 졸업하고, 그 밑에 아아들꺼정 핵교를 댕겼는데, 젊은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핵교도 문 닫아삤지.

지금은 나아많은 영감할매 살다가 하나 죽어삐믄 혼차 살고, 꼭 그런 식이라.

우리 집 영감도 간 지 20년 됐고마.

우리 남편도 옛날에 바람 피았다. 쏙은 상하지마는 그걸 내품할 수가 있나. 원래 남자라카는 거는 바람도 피고 그란다. 여러 번 그래해도 장 그러는 것도 아이고…, 바람인께. 그냥 지나가는.

내가 나 자신을 죽이고, 참고, 참고, 또 참고 사는 기다. 다 이해해야지, 그것도 이해 몬해 갖고 어찌 사노.

영감 죽음서 배를 팔았지. 집집마도 그런 식으로 배를 없앤 기, 지금은 섬에 배가 읎다.

나가 교회 나간 지가 20년 넘었다. 목사님도 주일에만 들오고 신도도 몇 없지만, 기도하고 그라믄 위로가 되니께 이래 산다. 그거 없으면 나도 이세상 사람이 아닌지 몰라.

참 인생 살기가 꼭 바다 같고마. 산전수전 다 겪으매 사는 기. 

파도치는 날이 있고, 잔잔한 날이 있고 그런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