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에서 만난 달다방 프로젝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섬집 엄마 공연

“엄마야, 일루 오너라.”
|“내는 오데서 할매를 델꼬왔능 줄 알았다.”
“내도 깜빡 속았다. 우째 걸음도 그래 할매겉이 걷노?”

연극이 끝나자, 어머니들은 엄마로 분장한 김정아 대장의 손을 끌며 서로 옆에 앉히려 했다.

 "네가 엄마였나?"
섬 어머니들은 김정아 대장의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재밌게 봤다. 참 재밌게 봤다.”
“우째 똑 내 얘기 겉노? 맞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았다.”
“오늘 원없이 웃었다. 고맙다.”

손을 맞잡고 손등을 쓸어준다.
어깨도 안아 준다.
죽도에서 본 어머니들 표정이다.

달다방프로젝트는 섬에 가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그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어, 다시 대사의 주인공인 섬 엄마들 앞에서 공연하는 프로젝트다.

공연에 앞서 꽹과리를 치며 섬마을 어르신들에게 공연을 알리고, 관중들이 모여들면 바다를 배경으로 공연을 한다.

"내가 몬산다~" 노름판을 뒤엎는 40대의 엄마

실패한 첫사랑 하나쯤, 남편 외도 한 번쯤, 이혼한 딸 하나쯤, 사업에 실패한 아들 하나쯤, 애들 봐달라는 딸 하나쯤……. 이웃의 텃세 속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자녀를 키워온 우리 섬 엄마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대사가 되어 무대에서 반사됐다.

그러나 이런 사연들이 서사적으로 길게 풀어지는 게 아니라, 연극적인 무대 전환과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로 밀도 있게 펼쳐진다.

섬 주민들의 표정은 연극 공연 전과 공연 후가 확연히 달랐다. 이미 4월에 이야기 채록을 위해 한번 만났던 터라 반가워하긴 했지만, 공연 후의 반가움은 처음의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농밀한 것이었다.

“아이고, 네가 엄마였나? 내는 깜빡 쏙았다.”

배우들의 손을 잡고 어깨며 팔을 쓸어내리는 어머니들의 손길에,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난 감사가 가득했다.

달다방 팀은 미리 떡을 준비해와 공연 뒤풀이까지 주민들과 함께했다.

달다방 팀이 마련해 간 떡을 차리는 어머니들 머리에
연극에서 받은 나비 한 마리씩이 앉았다.
싱크대 위에선 이장님 한 마디에 저녁밥상이 준비되고...

“밥 좀 해야것다.”

이장님의 한 마디에 솜씨 좋은 부녀회는 뚝딱 김치찌개와 멕아리조림을 내놓았고, 달다방 팀은 죽도 어르신들의 아들딸이 되어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정안나 연출은 “엄마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그것이 기획 의도라면 이들은 200% 달성했다.

지난해 4월에 시작해 20개 섬마을을 돌며 9월 2일에 마친 이 프로젝트는 올해 4월~6월 10개 마을로 축소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같은 프로그램으로 3년차 지원이 된 경우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년의 지원은 거의 불투명하단다. 아직 통영의 유인도 40여 곳을 못 돌아봤는데 말이다.

달다방 프로젝트 김정아 대장은 “통영시에서 마음을 내주셔서 협찬해 주시면 통영 섬마을을 다 돌 때까지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팀은 6월 25일 오후 2시, 항남동에 있는 ‘둥섭 다락방’에서 3개월 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전시 낭독극을 끝으로 해체된다. 공연을 했던 섬마을 주민들도 초청했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연극의 끝은 주민들과 한마음이 돼 마무리~

 

"섬 엄마들 활짝 웃게"-하는 마음으로 하나된 달다방 프로젝트

만능재주꾼들이 모인 달다방 프로젝트 멤버들

“서로 다른 곳에서 연극을 하던 배우와 제작자들이 짧은 기간에 호흡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섬 어머니들을 진짜 활짝 웃게 만드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것 같아요. 뜻이 맞아야 하지, 억지로 시킨다고 하겠습니까?”

어머니들께 다가가는 연극

달다방 프로젝트는 어떤 한 극단에서 만든 연극이 아니다. 연극계에서 극단의 경계가 무너진 건 벌써 오래전 일이다. 각자 극단에 소속돼 있다 하더라도, 뜻을 같이하는 프로젝트로 모여 공연을 완성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

달다방 프로젝트는 서울 대학로에서 ‘정극:정통연극’을 하고 있는 김정아 대장이 배우나 제작자, 작가, 연출을 모아서 ‘섬 엄마들의 이야기 채록-대본화-연극-전시-뒤풀이’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특별한 프로젝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이야기 채록 때도 한 달여, 공연 때도 한 달 가까이 집을 떠나야 할 뿐 아니라, 떠돌이 공연이니 악기 운반, 무대 설치·해체, 전시실 설치·해체, 운반을 모두 배우들이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하지만 달다방 프로젝트로 모인 젊은이들은 노래, 춤, 연기뿐 아니라 무대장치, 소품, 음향까지 전천후로 뛰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같은 마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작년 공연 때 우연히 영화배우 류승룡(사진)이 사흘 동안 팀에 합류했었다. 대학동창인 정안나 연출과의 인연 때문이다.

“그 친구(류승룡)가 기본적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친구예요. 혼자서도 쓰레기를 주우러 섬에 들어가기도 하는 걸 알고 있는 터에, 쉬고 싶다는 푸념을 하기에 ‘내 공연 보러 올래?’ 했죠.”

수우도에서 달다방 팀과 만난 류승룡 배우는 이 젊은이들의 열정에 감화받아 자진해서 스태프가 됐다. 젊은 사람들이 큰돈 생기는 것도 아닌데, 몇 안 되는 노인을 앉혀놓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연극을 하는 것에 감동한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공연장을 누비는 이 대배우를, 영화 볼 일 없는 섬 할머니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한산도 야소마을에 와서야, “7번방 아이가?” 하며 사인을 해 달라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류승룡 배우가 찍은 작년 공연 사진

“그 친구에게도 팀원들에게도 서로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달다방 팀이 보도자료로 배포해, 자료 사진으로 쓰고 있는 작년 사진은 모두 류승룡 배우가 찍은 것이다.

류 배우는 “당시의 제 마음은 그 사진들이 다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이 팀의 연극을 마음으로부터 응원하는지, 얼마나 충전의 에너지를 받고 왔는지가 그가 찍은 사진 속에 담겨 있다는 뜻.

20일과 21일에는 차도선이 가지 않는 매물도에서 공연을 했다. 6월이면 차도선 행정허가가 난다는 말에 결정한 매물도 행. 그러나 공연날까지 차도선은 뜨지 않았고, 팀원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1톤 스타렉스에 가득 실린 짐을 배에 옮겨 싣고 일일이 들고 날라야 했다.

연극이 끝난 밤, 무대를 해체해 트럭에 실어놓고 분장도 지운 달다방 팀은 대장과 감독이 개인 돈을 차출해 공수했다는 고기를 구웠다.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면 누군가 화음을 넣고, 누군가는 접시와 컵, 술병과 숟가락통을 타악기 삼아 장단을 맞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악기로 만들어 버리는 팀원과 서 있는 자리를 모두 무대로 만들어 버리는 팀원들.

이런 팀워크가, 한 끼에 7천원도 되지 않는 밥값을 책정받아 쓰는 열악한 재정과 노가다를 해야 하는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섬 엄마스토리를 엮은 정안나 연출

 

정안나 연출/작가

연출과 극작을 전공한 정안나 연출은 연극이 좋아서 연극만 하는 외길을 걸었다. 글 쓰고 연출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서른아홉 늦은 나이에 같은 연극인과 결혼하면서 활동을 중단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정안나 연출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기왕 연극을 하는 거라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모성이 준 선물이었다.

아들이 서너 살쯤 된 2010년에 극단을 만들면서 극단 이름을 수수파보리라고 지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수수와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파,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곡식, 보리처럼 오래오래 가슴 속에 남아 성장하는 연극을 만들겠다는 뜻이지만, 속뜻은 따로 있다.

아들의 애칭이 수수예요. ‘파보리(favori)’는 영어 favorite과 같은 뜻의 불어죠. ‘수수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라는 뜻이에요.”

수수파보리에서는 교육연극을 주로 한다. 정안나 연출은 다문화, 탈북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 창작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안나 연출은 섬마을 엄마들의 이야기를 채록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섬 엄마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오데 물질을 따라오고 그러노?" 이웃의 텃세에 힘겨운 엄마
이장님의 출연에 섬 주민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1인 다역을 소화해 내는 배우들
즐거운 섬 주민들
즐거운 섬 주민들
즐거운 섬 주민들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