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옻칠예술가 박재형

젊은 옻칠 예술가 박재형 

“옻액은 옻나무에 상처를 내서 추출해 냅니다. 옻나무는 자기를 보호하려고 피처럼 진액을 흘리는 거예요. 내 모습 같았어요. 누구나 상처를 입고 살아가잖아요.”

상처받은 옻나무에, 옻나무가 꺼내놓은 옻칠을 해 도닥여주며, 젊은 예술가 박재형 씨(31)는 오히려 본인이 위로받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현실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예술의 길 앞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을 하고 사회인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일어나곤 했다.

빠른 시간에 작업을 하려고 무리한 탓에 옻알러지가 생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 나에게 예술가의 재능이 있는 것일까? 예술을 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할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한두 해, 재형 씨는 예술과 현실의 갈림길 앞에서 지치고 가난해졌다.

재형 씨는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통고 1학년 때 서울로 전학, 홍대 회화과를 졸업했고, 바로 런던 킹스턴대학에 유학해 석사 과정(MFA Fine Art)을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부딪치게 된 사회의 벽 앞에서 재형 씨는 고민이 깊었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다. 지금까지 써 왔던 재료, 예술행위에 대한 회의도 재형 씨를 고민스럽게 했다.

“내가 미술을 하기 위해 써온 유화, 레진, 라커 같은 재료들에 거부감이 생겼어요. 만드는 사람에게도 해롭고, 결과물도 유해한 물질을 만들어 내잖아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깎고 다듬고 칠하는 과정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 모순된 일이죠.”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행위로 만드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것 자체가 예술, "홀로서기"

이런 반성 속에서 재형 씨는 버려진 것들을 주워 작업을 하기도 하고, 쓰고 녹여 또 쓸 수 있는 왁스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학업을 마친 예술가의 작품은 경제를 보장해 주지 못했다. 재형 씨는 인테리어 현장의 인부로 일을 하기도 하고 일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업할 재원을 마련했다.

그때 알게 된 옻칠미술관의 레지던시 과정은 재형 씨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 고향이 통영인 재형 씨는 옻칠예술작품의 재료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옻은 사람과 환경에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재형 씨에게 맞춤한 재료였다.

숲을 벗어났기에 숲을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를 벗어나 보니 오히려 우리것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지기도 했다. 내 기호, 내 성향, 내 성격의 형성에 우리 정서와 문화가 깊이 배어 있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 한 공부는 서구의 것에 많이 기대 있었다.

서양화를 중심으로 한 그림만 알던 재형 씨는 런던에서 다양한 예술을 만나면서 오히려 우리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 만나는 재료가 다양해지고, 예술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며 장르가 통합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다양성 속에서 내 것을 찾을 힘이 생긴 것이다.

김성수 관장은 젊은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높이 샀다.

옻칠미술관에 제안서를 낼 때부터, 재형 씨는 옻나무를 생각했다. 옻칠예술을 있게 한 그 옻나무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옻칠미술관의 김성수 관장은 젊은 작가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높이 샀고, 재형 씨를 위해 옻나무를 모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재형 씨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통영옻칠미술관에 레지던시 작가로 입주해, 옻나무 자체로 ‘홀로서기(Self care)’를 만들었다. 뿌리 없이 위태하게 서 있는 모습이 꼭 자신을 닮은 것만 같다.

“너무 재미있게 작업을 했고, 새로운 작업 아이디어도 많이 생겼어요.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죠.”

재형 씨는 오는 13일에 다시 런던행 비행기를 탄다. 예술이냐 생활이냐 하는 문제는 접기로 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 작품을 만들 테니까.

지금 마음 같아선 한국에서 작품을 하기 위해 영국 생활을 접을지도 모르겠다.

“결정된 건 없어요. 그러나 여기서 작업하는 게 영감을 많이 주고 너무 즐거워서 다시 빨리 오고 싶은 마음은 들죠.“

고향의 바다와 우리 것 옻칠이 준 치유로, 젊은 예술가는 새 힘을 얻고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 그리고 아마 가장 그다운 예술을 찾아 들고 다시 이 땅에 돌아올 것이다. 사람에게 이로운 재료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제 팽팽한 시위에 장전돼 날아갈 준비가 됐다.

김성수 관장과 박재형 옻칠 예술가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