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는 해병대” 별명 만든 통영상륙작전
“귀신잡는 해병대” 별명 만든 통영상륙작전
  •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0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국의 달 6월에 구국의 성지 통영을 생각한다
해병대통영상륙작전 기념관 내부

통영 원문고개에 가면,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기념관’이 있다. 한국전쟁당시 해병대가 단독으로 수행해 성공한 ‘통영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9월 15일에 일어난 상륙작전보다 한 달 앞선 통영상륙작전은 한국 전쟁 발발 이후 낙동강까지 밀리며 방어하기에 급급하던 우리 군이 유일하게 공격에 나서 북한군을 물리친 작전으로 기록됐다。또한 해병대에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지어준 전투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을 시작한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해, 8월 16일에 통영을 점령했다. 통영의 군민들은 갑작스레 바뀐 세상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고, 원문고개를 방어하던 경찰은 한산도로 후퇴하고 해군도 진주로 철수했다.

통영 군민들이 통영상륙작전을 도왔다. 

인민군의 목표는 거제를 통해 피난수도인 부산으로 진격하는 것.

“통영을 포기하고 거제도 해안을 지킨다.”

해군본부는 김성은 중령에게 거제도 해안을 지키라고 했지만, 김성은 중령은 통영을 탈환하려는 더 큰 계획을 짰다.

“통영반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상륙를 허락해 주시길 바람.”

김성은 중령은 “통영은 미 공군이 폭격한다.”는 해군본부를 세 번이나 설득해, “작전 변경을 허락한다.”는 답을 얻어냈다.

해병대가 용남면 장평리 바다를 통해 상륙한 작전은 참으로 아찔하고도 무모한 작전이었다. 우리 해군 703함이 강구안 밖에서 통영 시가지 쪽으로 함포 사격을 해 인민군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동안, 김성은 부대는 장평리 바다로 상륙했다.

이 작은 통구미배로 노를 저어 상륙작전을 펼쳤다. 

“통구미 배라고 부르는 작은 어선을 타고 노를 저어서 한밤중에 몰래 상륙했어요. 어떤 외신 기자는 한국 해병대가 18세기 해적 같은 작전을 수행했다고 표현할 정도였지요.”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기념관 정용원 관장의 설명이다. 기가 막힌 것은 어선뿐이 아니었다. 해변에 상륙한 다음의 군수품 이동은 마을 주민들이 머리에 이고, 지게로 져 날랐다. 40대에서 60대 노인들, 초·중학생들, 아낙네들이 쌀가마니와 박격포를 날랐다.

인민군이 시내로 나간 사이, 해병대는 인민군이 주둔한 망일봉 진을 차지했고 이틀 동안의 혈전 끝에 통영을 탈환했다.

임진왜란 때 통영은 한산대첩을 통해 전라도와 서울로 가는 일본군의 진출을 막았다. 그리고 거꾸로 한국전쟁 때는 거제로 내려가 부산으로 가려던 인민군을 막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는 뒤바뀌게 되었다.

호국의 달 6월, 원문공원 내에 있는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기념관은 국난극복의 성지 통영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6.25가 일어난 지 11년 만인 1961년 남망산공원에 세워졌던 이 충혼탑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2년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정용원 관장

해병대 통영상륙작전기념관 정용원 관장

 

통영에서 태어나 자란 정용원 관장(59)은 해병대에서 전역하고 해병전우회 사무국장을 8년 동안 지냈다. 전우회 활동을 하면서 해병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돼, 해병대의 7대작전 중에 가장 먼저 꼽는 통영상륙작전을 알리기 위해 힘써왔다.

2011년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기념관이 설립되면서 관장이 되어 기념관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구국의 성지 통영을 알리고 있다.

2018년 국가보훈처는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을 현충시설로 지정,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시민들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연간 7만여 명이 이 기념관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