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듦공방-공무진, 오은지

공방 안에 들어가야 작은 칠판 간판이 있다. 

“간판은 없어요. 저희가 간판이죠.”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봉숫골 아름다운 꽃길에 간판도 없는 작은 가죽 공방이 있다. 조그만 카드지갑, 팔찌, 핸드백 등 아기자기한 소품이 소박하게 놓여 있는 공방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야 작은 칠판에 ‘만듦공방’이라는 이름이 분필로 쓰여 있을 뿐, 간판은 물론 흔한 썬팅도 없다.

올해 3월에 문을 열었으니 아직 간판을 못 단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예 안 달 작정이란다. “공방 전면이 유리로 돼 있잖아요? 진열된 상품뿐 아니라 작업중인 저희 모습이 그대로 보이니, 그게 간판이죠.”

재미있는 발상을 하는 남편 공무진 씨(38)의 말이다.

가죽장인을 꿈꾸는 은지 씨.

제품을 만드는 진짜 공방지기는 아내 오은지 씨(36)다. 남편은 아내에게 제작을 배우고 있는 제자(?)다. 같이 먹고 자면서 일을 배우고 있으니 ‘도제’라 해야 할까?

은지 씨가 가죽 공예를 배운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5년 전 결혼을 하면서 통영에 내려온 다음, “재미있는 일을 해보라.”는 남편의 지지를 받고 시작한 일이 가죽공예였다.

“통영에 있는 한 공방에서 가죽공예를 배웠어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조용하고 찬찬한 성격의 은지 씨와 가죽공예는 잘 맞았다. 가죽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 시간도 좋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 메고 나가는 것도 좋았다.

과정을 마친 다음에도 은지 씨는 가죽에 매달렸다. 더 멋진 디자인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유튜브로 명인들의 제작법을 배우기도 했다.

“제품을 만든 다음에는 강구안이나 서피랑 마을장터 같은 프리마켓에 들고 나갔어요.”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재료가 비싼 가죽제품의 특성상 가격을 너무 낮춰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은지 씨에게 큰 자양분이 됐다.

2018년 통영시에서 창업할 청년을 모집하는 ‘청년창업 1번가 통영드림존 조성사업’을 공모했을 때, 부부는 가죽공방을 해보겠다고 지원했다. 5년 동안 수백 개의 제품을 만들면서, 은지 씨는 팔 만한 제품을 만들 역량을 키웠다.

만듦공방은 10명 창업자 중 8번째로 문을 열어 8호점이 됐다. 시에서는 더 빨리 문을 열기를 바랐지만, 공방은 어느 정도 진열할 제품이 있어야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더 당길 수가 없었다.

좋은 가죽 원단을 사용하지만, 이태리 장인만큼
수공을 받을 수 없는 작은 공방이다.

“지금도 한달치 일할 게 밀려 있어요.”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완성하는 제품들이라 대개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도 걸린다. 더구나 지금 만듦공방에서는 주문 하나가 들어오면 2개를 만든다. 먼저 하나를 샘플로 제작해 고객에게 보여주고, 의견 조율을 더 해서 판매할 제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먼저 제작한 샘플은 공방의 진열품이 된다.

수입이 다시 재료 구입으로 들어가는 구조라 아직은 이문이 적지만, 부부는 제품이 팔리면 자축하는 의미에서 소박한 외식을 한다. 봉숫골 골목에 있는 식당부터 섭렵하기 시작했다고.

연령층을 초월한 작은 가방들. 

은지 씨가 공방을 통해 수입을 얻게 되자, 그동안 생계를 책임졌던 무진 씨는 공방의 도제가 되어 기술을 배우면서 나전칠기교실에 나가고 있다.

“가죽과 나전칠기가 잘 어울려서 배우고 싶었죠. 가죽제품에 달 수 있는 소품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12공방에 있었다는 가죽 칠공예도 배우고 싶어요.”

1400년 세월에도 아름다운 옻칠의 광택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했던 공주 공산성의 백제갑옷이 바로 가죽에 옻칠을 한 제품이다.

무진 씨가 3년 과정인 나전칠기교실을 마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은지 씨가 가죽공예 선생님을 찾아가 더 나은 기술을 배울 참이다. 은지 씨의 공부가 끝날 즈음에는 무진 씨가 가죽칠공예를 배우러 떠날지 모른다. 장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끝없는 연마와 배움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투자로 이어질 계획을 세우면서도 부부는 ‘행복한 일’을 하게 된 즐거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수입과 만족의 역학에서, 수입이 적더라도 즐거우면 지속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구둣방 할아버지를 위해 밤새 가죽구두를 만드는 안데르센의 구두요정들처럼 무진 씨와 은지 씨는 둘만의 작은 공방에서 행복한 가죽 재단을 한다.

"닮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매라고 오해하지요." 장발의 공무진 씨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만듦공방에는 작은 소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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