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대한 헌사, 화가 진의장

진의장 화가는 서울 도봉산 아래의 화실과 통영 도천동 농협청과조합 건물의 화실을 오가며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사진은 통영 도천동에서).
충무교 다리 아래로 쏟아지는 월광 소나타.

“그의 그림은 고향에 대한 헌사(오마주)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이 진의장 前시장의 그림을 평한 말이다. 통영의 바다, 항구, 예술적 분위기들이 그의 그림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세병관 아래 통영항구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태어나 통영초중고를 졸업한 진의장 前시장은 평생 통영 사랑으로 살아온 통영의 아들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통영의 동백, 항구, 바다는 화가의 지독한 통영사랑을 입고 힘 있게 되살아난다.

“통영이 나를 키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말처럼, 진의장 前시장과 통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통영시민에게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통영시장을 지낸 행정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술인이다.

1968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거쳐 20여 년간 공무원으로 일한 이력, 최근까지 통영시장 선거에 도전한 이력, 통영시장을 재임한 이력이 있는데도 그는 “저는 정치를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고향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그에 헌신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사실 시장 재임시절의 행적을 살펴봐도 그의 걸음은 통영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던 박경리 선생이나 나전칠기 장인 김봉룡 선생의 발걸음을 다시 통영으로 돌려놓는 일, 한강에 떠 있던 거북선을 통영으로 끌고 내려온 일,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국제음악제를 기획한 것 등이 모두 통영의 문화예술을 위한 헌신이었던 것이다.

“내가 시장 하면서 가장 잘했다 생각하는 일은 박경리 선생을 모셔온 것입니다.”

2008년,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을 때 원주시는 당연히 박경리 선생이 원주에 묻힐 줄 알았다. 박경리문학공원과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박경리 선생의 창작활동에 최선의 지원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의장 화가의 ‘통영바다’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던 박경리 선생은 그가 시장에 당선됐을 때, 50년 만에 통영 땅을 밟았다.

“우리 큰누님이 나랑 20년 차이가 나는데, 큰누님이 박경리 선생의 1년 선배였어요. 두 분은 진주여고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사이였지요.”

방학 때마다 버스를 같이 타고 통영에 오가던 선배의 동생이, 좋아하는 ‘통영바다’를 그린 화가라는 것을 알고 박경리 선생은 손을 덥썩 잡으며 “소화 언니가 큰누님이라고요?” 하며 반가워했단다. 고향을 매개로 진의장 화가와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 박경리 선생은 2005년 병상에서 “통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통영에 오게 된 내력이다.

다시 화가로 돌아간 그는 지금 10월에 있을 창원 송원갤러리의 초대전 준비로 바쁘다. 내년 10월에는 서울 혜화동에 있는 재능문화센터에서 개인 초대전이 계획돼 있다.

지금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23회 화우회 전시회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23년 전 화우회를 창립한 창립멤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도 탁월한 미적 재능이 보였지만, 그는 미대를 선택하지 않고 법대를 선택했다. 예술은 자유로움 속에서 더 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구분도 거부한다. 밥상보를 화폭 삼아 빗자루나 주걱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생각의 자유, 재료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그림에 몰입하다보면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나다운 작품이 나오지요. 그림은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재료의 경계를 무너뜨린 그는 장르의 경계도 무너뜨린다. 그에게는 그림이 곧 시이고 음악이다. 2003년 수필문학으로 등단하기도 한 그는 통영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하고 수필집 ‘통영벅수’, ‘몸속에 녹아 있는 시’ 등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면에 족적이 남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는 오직 한 길을 걸어왔다. 통영과 통영 문화에 대한 사랑이다. 그 방편이 행정이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 그는 붓을 들고 고향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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