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어부
시 쓰는 어부
  • 김선정 기자
  • 승인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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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인협회 김승봉 회장

             두미도
                                  김승봉             

고향 집 앞마당에 섬이 하나 떠 있다.
벼랑만이 유영하는 남해바다 모퉁이에
밤이면 희미한 불빛 내 영혼을 키웠다.

덩굴진 비바람이 흔적없이 지웠다가
파도로 감금되는 겨울날의 청령포
때로는 더욱 선명히 바라보던 푸른 물빛

언젠가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남해바다
쉬이 갈 수 없었던 젊은 날의 밀물 썰물
지금도 간직하리라 내 가슴에 작은 섬

 

▲  김승봉 회장은 올해 문인협회 회원들이 본연의 문학에 정진하도록 돕는 게 목표다.
▲ 김승봉 회장은 올해 문인협회 회원들이 본연의 문학에 정진하도록 돕는 게 목표다.

3, 4, 3, 4…, 시상에 운율을 더하며, 통영문인협회 김승봉 회장은 새벽 시간에 시조를 쓴다. 시조의 형식은 몸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리듬과 같아서, 표현하는 데 제약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생각을 틔워 줄 때가 있다.

2004년에 ‘현대시조’에 시조 ‘닻’으로 등단한 김 시인은 지금껏 시조만을 써 왔다. 김상옥, 설우승을 잇는 통영의 시조시인이 되고 싶건만, 시집 없이 훌쩍 15년이 지났다.

눈앞의 삶은 늘 바빴고 치열했다.

올해 5월에 그는 시집을 낼 참이다. 그동안 써놓은 노트에서 출판을 기다리는 시들이 180여 편, 이중 반을 추려 한 권을 먼저 낼 작정이다.

시간이 갈수록 시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전에 쓴 글을 돌아보면 자꾸 손을 대야 할 곳이 보이고 글에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마 여기서 시간이 더 가면 그 시들이 돌덩이가 될지도 모른다.

▲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을 초정 김상옥 선생의 글씨로 새긴 시비 앞에서.
▲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을 초정 김상옥 선생의 글씨로 새긴 시비 앞에서.

그는 활동가다. 지금껏 시집을 내지 못한 데는 활동가적인 생활이 한몫했다. 올해만 해도 그는 통영의 대표 수필단체인 물목문학회 회장과 통영문인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작년에는 통영문인협회 부회장이었지만, 회장, 다른 부회장, 사무국장이 모두 여성이어서, 그가 일할 몫은 따로 있었다.

4년 전부터 작년까지는 미수동 자치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자치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미수동자치위원회는 2년 연속 최우수 운영상을 받았다. 스스로 여기기에도 그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다. 맡았다 하면 매진하는 성격 탓에, 그의 삶은 언제나 치열했다. 

그는 스스로를 ‘어부’라고 부른다. 그의 생업이 감성돔을 일시 축양해 납품하는 중간 양식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잔고기를 받아다 300g이 되면 납품합니다. 밤에 눈을 감고 고기를 담아도 20마리를 담으면 정확히 6kg이 되지요.”

그는 1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우럭이나 참돔, 감성돔을 취급하는데, 연중 똑같은 사이즈를 출하해야 한다. 오후 3시 반쯤 생선을 납품 차에 싣고 나면 그 뒤에 문학회 일이나 자치위원회 일을 본다.

모터보트 렌탈 사업도 겸하는 그는 보트를 내보내느라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모터보트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손님들은 해가 뜨자마자 보트를 끌고 나가고 싶어한다. 1급면허를 갖고 있는 그는 일출 1시간 전에 배를 점검하고 준비한다.

그가 운영하는 경동레저는 10대의 배를 갖고 있는데, 전에는 10대가 모자랄 정도로 잘됐다. 하지만 경기가 악화되면서 레저하는 손님은 많이 줄었다. 더구나 4월부터 8월까지는 렌탈 사업이 비수기로 접어든다.

비수기에 그는 오랜 숙제 같은 시집에 매달릴 참이다. 5월에는 백일장이며, 박경리 선생의 추모제며 문협이 주관하는 행사들도 기다리고 있다.

문협 회장이 되고 나니, 문학 관련 사업에도 마음이 바빠진다. 아직 김상옥 선생님이나 김춘수 선생님의 문학관이 없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김상옥 선생님의 시비가 아무도 발길 닿지 않는 남망산 외진 곳에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올해는 통영문협과 문학을 위해 달려보겠습니다.”
문인협회 회원들이 본연의 문학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올해 그의 목표다. 물론 ‘문학에 정진하는 회원’은 자신을 포함한 말이다.
 
분주한 생업과 활동이 그의 손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동터 오는 새벽,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시심(詩心)을 가다듬는다.

▲  남망산 깊은 곳, 이 외진 길 뒤에 있는 김상옥 선생의 시비를, 그는 꺼내오고 싶다.
▲ 남망산 깊은 곳, 이 외진 길 뒤에 있는 김상옥 선생의 시비를, 그는 꺼내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