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상으로 예술가를 낙인찍는 일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정치적 사상으로 예술가를 낙인찍는 일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 통영신문
  • 승인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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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벅수골의 연극 ‘연못가의 향수’를 보고 나서

내가 졸업한 통영여고 앞에는 윤이상 기념관이 있다. 교가도 윤이상이 작곡했다고 한다. 통영 출신인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인데, 한국에서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건 윤이상이 북한으로 넘어간 ‘빨갱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런 이야기가 전부였다.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만에 통영에 돌아왔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요즘, 윤이상의 이름이 곳곳에서 부쩍 많이 보였다. 매년 열리는 음악제였는데도 반쯤 외지인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새삼스럽게 보였다. 국제음악제가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제라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윤이상을 음악가보다는 사상가로 기억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전에 들었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 물음표를 그렸다. 왜 이렇게 큰 음악제를 통해 윤이상을 기념하는 걸까?

윤이상에 대한 연극, ‘연못가의 향수’를 보기 시작했을 때 내가 품었던 의문도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진실은 뭔데?

연극은 꼭 퍼즐 맞추기 같았다.

윤이상에 대한 이야기지만, 극중에 윤이상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윤이상이 죽은 후 그의 추모음악회를 위해 모인 제자들이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윤이상은 한국인 제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일찍부터 간첩으로 낙인찍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추방당한 뒤, 그는 죽을 때까지 그토록 그리워하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다. 사후 1년이 배경인 이 연극에서도 수상한 그림자를 한국에서 온 안기부 직원으로 오해해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에서 그의 삶은 그렇게 살얼음이었구나.

북한과 일본의 제자들은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즐겁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인 제자들은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왜 그럴까?

연극은 직접적인 답을 주기보다는 퍼즐 조각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맞추는 것은 관객의 몫이었다.

어떤 연극적인 장치나 연출보다 배우들의 재치 있는 연기와 대화로 채워진 두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던지는 물음표의 꼬리를 붙잡고 연극에 몰입했다.

그러다보니 연극이 끝날 무렵 내가 완성한 그림은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상가 윤이상의 얼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음악가의 초상이었다.

연극은 윤이상의 정치적 사상이 옳은지 그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떤 사람도 시대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극중 이수자 여사는 북한의 제자들도 환영하고, 윤이상에 대한 나쁜 글을 쓴 한국의 제자도 환영하고 일본인 제자도 끌어안는다. 거기에는 정치적 이념은 온데 간데없고,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과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월드컵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남한을 응원하는 북한의 제자들이 코믹스럽게 그려져, 어쩔 수 없는 한 민족임을 드러낸다.

윤이상은 음악을 만들고 제자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그가 살고 있던 시대는 끝없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그러나 연극 속에서 윤이상의 제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윤이상이 끝없이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인 우리나라를 그리워하며 음악을 만들고 가르쳤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삶을 정치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침묵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침묵하는 정치적 행동이 되듯이.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과 업적 전부를 정치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평범한 학생인 나도 나만의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정치색만으로 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

사상이 국경을 나누는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했을지 몰라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한 사람을 정치적 사상으로 낙인찍고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통영에서, 윤이상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상가 윤이상이 아니라 음악가 윤이상을 기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도 단지 정치적인 생각 때문에 평생 이룬 업적을 모조리 폄하당해서는 안 되니까.

배경도 바뀌지 않는 이 단순한 연극을 보고, 나는 민족과 사상과 예술을 생각하며 남망산을 내려왔다.

 - 이 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