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준법지원센터 이상재 계장

▲  산양면에서 나고 자라, 통영 근무 때  더 아이들에게 마음이 간다는 이상재 계장.

“…피해자 측과 구두로 합의에 이른 점, 이 사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보호자의 보호의지와 보호능력이 양호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단독수강명령 처분이 적절할 것으로 사료됨.”

이상재 보호관찰관은 이제 겨우  열다섯, 부모의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한 앳된 민재(가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처분의견을 썼다.

이상재 계장(49)이 통영준법지원센터에서 하는 일은 폭력이나 절도, 성폭행 등의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아이들의 환경을 조사하여 소견을 피력하며, 보호관찰 대상이 된 청소년들을 지도 감독하는 일이다. 보호관찰관의 소견이 한 청소년의 인생을 큰 분수령으로 나눌 수 있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

판사가 가장 많이 참고하는 것이 바로 이상재 계장과 같은 보호관찰관의 조서다. 때에 따라 판결에 70~80%의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이상재 계장은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들을 만나고 학교 교사들을 만난다.

이상재 계장의 고민은 민재와 달리 보호의지를 찾을 수 없는 보호자나 오히려 비행의 원인이 되는 보호자를 만날 때 깊어진다. 아이들을 소년원에 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8년간 소년원에서 근무했어요. 거친 아이들이 많이 있으니까 웬만한 아이들은 오히려 소년원에 들어가서 범죄를 배우거나 그쪽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우가 생겨요. 될 수 있으면 소년원에는 안 가야죠.”

체육교사였던 이상재 계장은 학교에서도 소위 ‘문제아’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함께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면서 말썽꾸러기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어, 2004년 소년원 학교의 체육교사가 됐다.

소년원에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기술학교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교과 학교가 있다. 사회와 단절돼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몸을 움직이는 체육은 마음을 열기 좋은 과목이다. 함께 땀을 흘리며 뛰고 나면 속내를 털어놓는 아이들이 있다.

소년원에는 한 달에서 여섯 달이면 출소하는 아이들이 늘 200여 명씩 있었다. 이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상재 계장은 따뜻한 가정만 제대로 있어도 달라질 아이들이 80~90%는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보호관찰관이 된 2012년부터는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더 많이 만난다. 대부분은 부모가 선처를 부탁하며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 약속하지만, 때로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만난다. 이런 경우는 작은 범죄로도 소년원에 가야 하는 불가피한 일이 생긴다.

▲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하는 청소년들을 돌아보러 들른 아름다운가게에서 장계영 사회복지사와.

2013년에 만난 영호(가명)가 그랬다. 똑같은 절도죄로 들어왔는데, 영호는 돌아갈 집이 없어 소년원에 가야할 형편에 처하고 말았다.

“영호를 보호해 줄 가정이 없을까?” 이상재 계장은 아동보호시설인 그룹홈을 찾다가, 어린 남자아이들을 돌보는 ‘파란나라’를 만났다. 사춘기의 전과소년을 맡아본 적이 없는 작은 곳이었지만, 강명식 사회복지사는 이상재 계장의 부탁으로 어려운 일을 맡았다. 법원에 보내는 소견서에 “적절한 보호자가 있다.”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영호는 한동안 삼촌의 지갑을 털어 가출하는 둥, 전의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강명식 사회복지사는 감사하게도 “이젠 내 자식인데요.” 하며 친구들 집으로 모텔로 아이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학교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자 학교 빠지는 횟수, 집을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영호는 삼촌의 아들이 됐다.

6개월 뒤, 이상재 계장은 민혁(가명)이를 다시 강명식 사회복지사에게 보냈다. 이미 삼촌 편이 된 영호가 있어, 민혁이는 더 빨리 적응했다. 이상재 계장은 이렇게 차례로 8명을 파란나라로 보냈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자립했다.

주변의 사회복지사들은 “그런 공무원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부모 없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로 작정해서 이런 일을 한다지만, 맡은 일을 넘어서서 없는 가정을 만들어 주면서까지 아이들을 아끼는 보호관찰관이기 때문이다.

이상재 계장은 보호관찰을 거쳐 간 아이들이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돼 있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 길에서 만난 철민(가명)이에게 “요새 뭐하노? 이제 말썽 안 부리제?” 하며 눙치기도 한다. “아~가 둘입니더. 말썽은요. 렉카 끌고 있습니더.” 스물여섯 어린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짠하지만, 한편 대견하기도 해 밥도 사고 애들 과자도 사준다.

오늘도 이상재 계장은 폭행으로 넘어온 지호(가명)의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훑어본다.

▲  빈 시간에는 파란나라 그룹홈에서 아이들과 같이 특별활동을 하기도 한다. v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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