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법 - ‘삐삐책방’ 책방지기 박정하 씨

책 읽어주는 삐삐쌤

"삐삐처럼 살고 싶어서 삐삐책방이라고 했어요"

골목마다 문학의 향기가 배어 있는 통영 서피랑에 조그맣지만 알찬 책방이 있다. 이름도 재미있는 ‘삐삐책방’.

네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전문 문학 출판사에서 출판한 수준 높은 시집과 읽어도읽어도 재미있는 어린이그림책이 가득하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책방지기 박정하 씨(29)의 안목 덕이다.

“그림책이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요. 지미 리아오 ‘별이 빛나는 밤’, 아라이 료지 ‘아침에 창문을 열면’, 천정철 시, 이광익 그림의 ‘쨍아’, 백희나 ‘알사탕’,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 같은 책은 제가 즐겨 소개하는 책이에요. 요새 좋아하는 그림책은 다니카와 슌타로 시, 가타야마 켄 그림 ‘옛날 옛날에 내가 있었다’, 이지은 ‘빨간 열매’ 같은 책이지요.”

고르고 골라 좋은 책만 진열해 놓았다.

책 이야기가 나오자, 정하 씨는 국내외 작가와 작품을 줄줄이 읊으며 동화 마니아가 된다.

“공간이 좁아, 정말 좋은 책만을 고르고 골라 진열할 수밖에 없어요.”

쏟아지는 출판물 속에서 길을 잃는 독자 입장에서는 정하 씨 책방이 좁은 게 더 좋은 일인지 모른다. 정말 최선의 책들을 모아놓았으니 말이다.

정하 씨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책은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동소설인 ‘삐삐 롱스타킹’이다. 주근깨 얼굴에 양갈래 머리, 짝짝이 스타킹과 긴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삐삐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와 괴력을 지닌 소녀다. 우리나라에는 ‘말괄량이 삐삐’로 소개됐다.

“삐삐를 좋아하기도 하고 삐삐처럼 살고 싶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삐삐쌤’이라는 애칭을 사용했어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정하 씨는 부산의 어린이 책방 ‘책과 아이들’에서 삐삐쌤으로 책읽기 자원봉사를 했다. 봉사로 시작한 일이 직장이 됐고, 4년 동안 부지런히 일했다.

어느 순간,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멈춰 섰을 때, 정하 씨는 스웨덴의 삐삐마을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로 여행을 떠났다. 소박한 농가들이 띄엄띄엄 펼쳐져 있는 한가로운 전원 속에서 정하 씨는 린드그렌의 생가, 박물관을 돌아봤다. 그리고 삐삐가 타고 올랐을 법한 나무들과 뛰어다녔을 법한 들판을 거닐며, 삐삐를 만나고 돌아왔다.

정하 씨가 통영에 자리를 잡게 된 건 남자친구 덕이다. 정하 씨처럼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남친 이병진 씨가 몇 년 전 통영의 작은 책방인 봄날의책방에 근무했던 것.

부산 책방에 근무할 때부터 남자친구 덕에 통영에 자주 놀러왔던 정하 씨는 통영의 젊은이들과 사귀면서 통영의 공연과 문화에 조금씩 물들다가, 아예 통영에 눌러 살기로 했다.

“통영의 문화를 살리자.”며 의기투합한 골목길 사장님 중에 게스트하우스 ‘잊음’에서 한쪽 구석을 책방으로 내줬다. 2년 전 일이다. 큰 책장 하나, 마당에 바퀴 달린 조그만 책장 하나가 전부였지만, 정하 씨가 처음 연 작은 책방이었다.

삐삐책방에는 그림책이 특히 많다. 

작년에 삐삐책방은 충렬사로 올라가는 은행나무길, 서피랑 전기불터 옆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정하 씨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심야책방, 작가 초청 강연 같은 책과 관련한 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전부터 긴밀히 관계하고 있는 부산의 소소책방과 남자친구가 현재 근무하는 진주문고, 삐삐책방이 함께 문체부 공모 사업인 ‘작은책방 지원사업’에 당선돼 여러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달에 두 번씩 김점용 시인을 모시고 시창작 교실을 열고 있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작가 초청이나 시 낭송회 같은 행사를 해요.”

1997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김점용 시인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메롱메롱 은주’와 ‘오늘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를 펴낸 통영 출신의 중견작가다. <시산맥>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시립대 교수를 역임했다.

이 외에도 그림책 공부나 읽기 모임, 고전소설 읽기 모임 같은 소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에요. 같은 그림책이라도 나이에 따라, 감정에 따라 느끼는 폭이 달라지고 메시지도 달라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림책을 ‘백세문학’이라고 불러요.”

정하 씨는 어른들도 볼 수 있는 울림이 큰 그림책을 좋아한다. 글자는 몇 자 없지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책, 책장을 덮고 꼭 품에 안은 채 다시 내용을 되새겨볼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 좋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책을 꼭 만들고 싶다.

겨울밤, 삐삐책방에서는 아이와 어른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할 삐삐 같은 동화가 왈강달강 재미난 꿈을 속살대고 있다.

시낭송회나 창작교실 같은 문화행사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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