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노란 집으로 간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Tahitian Women:1891년작) 영원한 유토피아를 꿈 꾼 원시주의 화가 고갱의 대표작, 도시의 화려함을 피해 자연 그대로의 원시주의를 추구했던 그는 탈인상주의의 행보로 종합주의라는 사조를 만들어낸다.<br>
타히티의 여인들(Tahitian Women:1891년작) 영원한 유토피아를 꿈 꾼 원시주의 화가 고갱의 대표작, 도시의 화려함을 피해 자연 그대로의 원시주의를 추구했던 그는 탈인상주의의 행보로 종합주의라는 사조를 만들어낸다.

“나는 미개인이다. 문명은 첫눈에 그 사실을 알아챈다. 나의 작품에는 당혹스럽거나 경악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다. 다만 나로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야성적 기질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품의 모방은 불가능하다.”

폴 고갱은 19세기 후기 인상파를 이끈 프랑스의 화가로 제도화된 문명을 거부하고 인류의 근원과 원시적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직접 실천했던 인물로 우리에게는 빈 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게 한 동기를 부여한 인물로 더 유명세를 치르는 화가다.

소설 ‘달과 6펜스’의 내용처럼 증권거래소의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다 취미로 그림을 수집하던 것이 전업 화가로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덴마크 출신의 메트 소피 가드((Mette-Sophie Gad)와 결혼 후 다섯 명의 자녀를 두게 되지만 그가 제2의 인생으로 화가의 길을 택하자 부인은 결별을 고하고 아이들과 함께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고갱은 그때부터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화단에 연고가 없었으나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그림에 대한 꿈과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가족과 이별 후 파리 근교를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가족이 5년간 남미의 페루에서 살았던 기억과 해군으로 복무하며 남미 전역과 지중해, 북극해 등을 다녔던 경험은 그에게 이국적 풍광과 제도 및 관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이후 이 경험들은 그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다수의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고갱 역시 살아생전에는 화가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화가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화풍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그의 행보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는 인상주의와의 결별을 예고 한다.

“예술작품에는 예술가의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생각은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하였고 1888년에는 색채의 단편들을 강렬한 윤곽선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색채묘사와 실험 미술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와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등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종합주의'(synthétisme)라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다.

1888년 어느 날 고갱은 고흐의 동생 테오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무명 화가로 독립적 화풍을 정립해 나가며 파리 생활에 적응해 나가지만 언제나 경제적인 부분이 그의 발목을 잡으며 생활고로 지칠 무렵이었다.

당시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옮겨 테오를 통해 파리에 있는 젊은 화가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를의 노란 집을 화가공동체의 거점으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 공동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단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화가였던 고흐와 공동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하는 화가는 아무도 없었다. 이에 테오는 화가의 길로 들어선 형 고흐를 격려하기 위해 고갱의 궁핍한 파리 생활로 인한 빚도 갚아주고 그의 화랑에서 정기적으로 그림도 사주겠다는 조건으로 고갱이 고흐와 같이 작업을 진행해주기를 제안한다.

물론 테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화가로서 고갱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였으며 동시에 형 고흐가 구상하는 화가공동체의 주요 인물로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그런 화가가 되어 주기를 바랬다.

1888년 10월 23일 드디어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아를에서 만나게 된다.

고흐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고갱이지만 테오의 경제적 지원 약속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 고갱은 앞으로 그들 사이에 벌어질 참담한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아를의 노란 집에서의 역사적인 9주의 첫째 날을 시작하게 된다.

회화계의 이단아 폴 고갱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1890-1891년)인상주의처럼 세상의 외면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내는 것에서 벗어나 가시적인 것 이상의 것, 초월적인 것, 그리하여 우리의 상상으로만 닿을 수 있는 어떤 지점을 그리고자 했던 고갱은 대상의 외형을 화면에 고스란히 재현하겠다는 자연주의에 벗어나기 시작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완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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