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예술대학 학생들과(1985년)
베를린 예술대학 학생들과(1985년)

1969년에서 1971년까지 하노버음악대학 강사,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서베를린음악대학 명예교수를 지내고,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교수직에 매력을 잃어가던 선생을 은사 슈바르츠 쉴링이 베를린 음대의 위상을 위해 정교수로 추천했고,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예술대학 정교수를 맡았다.

독일, 영국, 그리스, 루마니아, 미국, 타이완, 일본 등에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고,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음악계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한국 제자로는 김정길, 강석희, 백병동이 있는데, 모두 서울대 음대에서 재직하며 한국 현대음악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먼 나라에서 유학 와 공부에 매진하는 젊은이들의 학업을 위하여 선생은 2년마다 돌아오는 한 학기씩의 휴가도 포기했고, 열성적이고 수준 높은 수업으로 제자들을 모두 국제 작곡 콩쿠르에 입상시켜 자국으로 돌려보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1996년 4월, 일본의 제자들이 마련한 추모음악회에서 제자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는 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5, 6년씩 더 베를린에서 윤 선생님에게서 많은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넓고 깊은 인간을 더 많이 배웠습니다.”

오사카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제자 야마구찌 후꾸오는 선생의 음악과 인품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윤 선생님의 위대함은 이 동양철학 사상의 보편진리, 음향을 하나의 명료한 ‘음악의 형태’로 바꾸어 놓고 특수화시키고 민족성을 뛰어넘어 보편성에 이르게 하고 유례없는 현대성을 확립시킨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높은 차원의 정신성은 현실사회의 부조리를 정화하고 빠른 판단력을 가지게 한다. 예술, 특히 음악은 현세의 부조리를 정화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예술은 인간의 본래의 자태를 과오에서 환기시키고, 우리들의 정신으로 돌려세워야 할 것이다. 나는 윤 선생님의 예술에서 깊은 정신성을, 철학에서 강한 인간성을, 그리고 인생에서 ‘생’에의 희망의 불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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