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의미망인 1969

“아버지의 방은 천장은 높고 크기는 우경이 방보다 좀 작다. 광선이 잘 들어오고 바깥 경치를 잘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이 방 안에 혼자 있다. 그래서 조용해서 좋다. 심부름하는 아이들도 친절하고 여기 관리들도 친절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참 추운 때다. 영하 13도, 그러니까 베를린에서는 이렇게 추운 날이 없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진 대로,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그릇에 담긴 물이 바로 얼어버리는 형무소 독방에서 선생은 작곡을 했다. 차디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한두 소절 쓸 때마다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때때로 발작하는 심장병을 다스리면서, 심한 현기증 때문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자주 벽에 기대가며,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면서….

1968년 2월 5일,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이 완성되었다. 1968년 7월 26일, ‘율’이 완성되었다. 1968년 11월 25일, 1963년 북한 방문에서 본 강서고분의 사신도에서 영감을 얻은 ‘영상’이 완성되었다.

1993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선생은 ‘영상’을 작곡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곡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밀스 대학으로부터 위촉받아, 한국의 감옥에서 작곡했습니다. 그때 나는 검찰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은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나는 사형을 구형받은 시점에 내가 작곡하고 있던 부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곡이 과연 연주될 수 있을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곡을 완성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공포 속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음악 안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또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예술가의 의지력은 그를 둘러싼 삶의 현실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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