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호 통영시의회 의원
정광호 통영시의회 의원

해마다 6월이 오면 아프지만 아프다고 소리 한 번 못 내고 그 아픔을 속으로 꾹꾹 누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그리고 권력에 편승한 단체들에 의해 무자비한 학살로 쓰러져간 힘없는 민중과 그 가족들은 평생을 공산주의 빨갱이로 낙인찍혀 고향까지 등지고 말 한 마디 못하고 숨어 살 듯 살고 있습니다. 통영시에서도 보도연맹으로 강제 가입되어 한국전쟁 직후 무고하게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보도연맹사건이 조금 생소하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공산주의 사상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49년 6월 5일 조직한 반공단체가 보도연맹입니다.

연맹원 모집은 당시 지역별 할당제여서, 공무원들의 실적주의로 반강제적 가입이 많았습니다. 사상과는 관계없이 쌀, 식량 배급을 준다고 선전하여 10대 중고교생도 가입시켰습니다. 1950년 초 집계된 회원 수는 3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북한과 내응하고 뒤에서 배신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해, 아직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은 마을의 보도연맹원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경기도 이천시에서는 군복을 입고 경찰마크를 붙인 사람들이 국민 보도연맹원 100명을 총살했고, 대전 교도소에서는 3,000여 명이 처형당하는 등 대한민국 전역에서 국군, 경찰, 교도관들에 의해 각 마을별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지난해 통영신문의 기획기사에서는 통영에서도 800여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학살되었다는 당시 해군 헌병대 문관의 증언이 실렸습니다. 구체적인 학살 장소로 안정 무지기고개, 명정동 절골 등이 있으며 그리고 동호동 장자도 금굴과 영운리 앞바다 등에 수장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동족상잔의 아픔은 70년이 지난 세월에도 아직 우리 통영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타 지역에서는 보도연맹 사건의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그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 사업들이 벌써부터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에서는 신문으로 보도되는 기획특집 기사 몇 줄로 그때의 진실이 조금 드러나 있을 뿐,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그 상처가 아물어 가는데 왜 다시 후벼파서 드러나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고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처방과 치료를 제대로 해야지 딱지 앉았다고 그냥 둔다면 다시 덧나서 우리의 몸을 더 아프게 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묻어두고 갈 수 있겠지요. 하지만 빨갱이라는 연좌제에 낙인찍혀 감시와 멸시를 받아야 했고 그걸 견디기 어려워 정든 고향을 떠나 살아야했던 그분들은 7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인내하고 감내하면서 감옥 같았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속에 좌익 관련자도 있었겠지만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밝혀지는 대부분은 무고한 우리 민중이었고 백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 또한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겠지만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민간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유해 발굴,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 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은 왜곡 은폐된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문제를 알고도 고치치 않고 숨기는데 급급해 하면 그릇된 역사를 반복하게 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순반란사건, 4.3제주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민간인들이 잔혹하게 학살되는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습니다만, 국민보도연맹보다 더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사건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늦었더라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령들의 명예회복과 유해발굴을 위해 우리시와 시민들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간입니다.

진실화해 위원회 소관이라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통영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억울하게 학살된 민간인 보도연맹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과 위령사업지원 등 필요한 행정적 지원과 시책을 강구해야 할 때입니다. 훼손된 국가권력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고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진실은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내 나라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썼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성원으로 재선의원이 되면서, 저는 이 시대적 사명을 앞장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무고한 우리 주민들께 삼가 머리숙여 조의를 표하며, 하루빨리 진실규명과 유해발굴이 될 수 있도록 통영시와 통영시민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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