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유디트는 애국열사인가? 팜므파탈인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Ⅰ<br>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Ⅰ

시선을 피한 무심한 듯 차가운 얼굴에 앞가슴을 드러낸 선정적인 모습으로 남자의 머리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는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는 여인!

그녀는 방금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고 조국 이스라엘을 아시리아의 군대로부터 지켜내는 애국적인 거사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녀의 이름은 유디트(Judith)다.

유디트는 아름다운 용모에 정숙한 과부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구약성서 외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여성이다.

아시리아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메디아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동맹 출정을 요청하지만 이를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는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에게 자국의 지원요청을 거절했던 모든 나라들을 침략하라고 명한다.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군대는 약탈과 살인 등의 만행을 저지르며 주변국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유디트의 조국 이스라엘에도 야만의 손길을 뻗는다.

유디트는 어느 날 국왕 우찌야(Uzziah)가 아시리아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영토를 넘긴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아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 주변 물길을 차단해 식수와 양식을 모두 끊어버려서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하느님의 도움이 없어서 이러한 상황이 닷새 동안 지속된다면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없이 영토를 넘기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 유디트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치장하고는 시녀와 둘이서 적진의 진영으로 간다. 그리고는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감하여 이곳으로 도망쳐 왔으며 그들을 쉽게 침략할 수 있는 계책을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이에 홀로페르네스는 아름다운 외모의 유디트에게 빠져서 그녀의 말을 모두 받아들인다.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멸망일은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사흘을 적진에서 머물며 기도 하자 홀로페르네스는 나흘째 되는 날 그녀를 위한 성대한 연회를 마련한다.

흥에 겨워 축배를 들던 홀로페르네스는 만취한 상태에서 신하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유디트와 둘만이 천막에 남게 되자 그녀를 껴안는데 그 순간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칼로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준비한 자루에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넣어서는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던 총사령관이 목이 없는 시체로 발견되자 아시리아인들은 사기가 떨어져서 모두 도망가고 이스라엘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온다. 이후 수많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유디트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존경 속에 삶을 마감한다.

‘유디트’는 히브리어로 ‘유다 여자’라는 뜻이다. 성서의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기원전 2세기 시리아 치하의 이스라엘 상황을 역사적으로 연관시켜서 이스라엘의 독립과 유대교 전통 신앙에 대한 종교의식을 교훈적으로 담아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조국을 위한 대담한 살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매혹적인 여성과 죽음이란 흥미로운 소재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다수의 작품으로 남겨졌다.

조국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나선 애국열사!

그녀의 아름다움 속에는 숭고한 애국정신이 담겨있어서 더욱더 빛이 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화가의 그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화가가 시리즈로 화폭에 담아낸 유디트는 숭고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팜므파탈이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시리즈다.

이 그림은 황금색으로 장식된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배경의 문양들 속에서 구국에 대한 비장한 각오나 애국적인 숭고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는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이 남자를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파탈에 가깝다.

황금빛 색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612~1621년)’는 구약성서 ‘유디트’에 소개된 이야기를 담은 그림으로, 조국을 침략한 아시리아의 장수를 이스라엘의 젊은 과부 유디트가 하녀와 함께 목을 베는 장면을 작품에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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