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이 탄생시킨 명작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두 번째 작품 - 사랑하는 여인을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에 반복해서 죽여야만 하는 기사의 기구한 사연이 담긴 내용<br>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두 번째 작품 - 사랑하는 여인을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에 반복해서 죽여야만 하는 기사의 기구한 사연이 담긴 내용

1348년 문화예술로 번성했던 중세 유럽의 경제적 중심지였던 피렌체에 엄청난 재앙이 찾아온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펜데믹이 피렌체를 강타한 것이다. 바로 흑사병이었다. 1347년 겨울 시칠리아에 상륙한 이 재앙은 곧 이탈리아 중북부지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듬해 봄부터는 중부 내륙의 도시를 차례로 괴멸시킨다.

2년 반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지며 한때 12만 명까지 늘어났던 피렌체의 인구도 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많은 이들은 이 역병을 피해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숲속이나 시골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인간의 본성과 비도덕적 사회를 풍자한 이야기로 셰익스피어 등 세기의 문호들에게 영감을 준 이탈리아 대표 문학이 탄생한다.

바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3년)이다.

이 이야기는 흑사병으로 만연한 죽음의 도시 피렌체를 떠난 남녀 10명이 피에솔레(Fiesole) 언덕의 별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2주 동안 별장에 머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과 휴식을 취하기로 한 토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열흘 동안 각자 하루에 10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들이 열흘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는 총 100편이었으며 이 100편의 이야기가 바로 중세문학을 대표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보카치오는 흑사병의 참상을 목격하고 4년여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하였는데 ‘데카메론’은 그리스어로 ‘10일’을 의미하기 때문에 10일간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후 이 책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1483년 보티첼리는 ‘데카메론’의 일화를 모티브로 총 4개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이 책의 이야기 중에서도 다섯째 날 여덟 번째 이야기인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Historia del Nastagio degli Onesti)’를 작품화했는데 그가 작품 속에서 담아내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첫 번째 작품은 이탈리아 라벤나의 오네스티 가문의 상속자인 나스타조(Nastagio)가 신분이 높은 트라베리사르 가문의 파올라(Paola)라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실의에 빠져 라벤나 외곽의 숲에 머물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5월의 어느 금요일 나스타조는 숲을 산책하다가 아주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벌거벗은 알몸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고 그 뒤를 백마를 타고 칼을 든 기사가 사냥개와 함께 그녀를 바짝 뒤쫓고 있다. 나스타조는 사냥개에게 쫓겨 도망치다가 쓰러지기 직전에 놓인 그 여인을 도와주기 위해 나뭇가지를 집어 개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사냥개의 날카로운 이빨은 벌써 여인의 엉덩이를 물어 버린다.

보티첼리는 이 첫 번째 작품 속에서 나스타조를 각각 다른 설정의 이야기로 두 번 등장시키고 있다. 그림 왼쪽에서 빨간색 바지를 입은 나스타조는 한번은 실의에 빠져 망연자실한 채 산책하는 모습으로, 또 한번은 나뭇가지를 들고 사냥개를 쫓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두 번째 작품은 칼을 든 기사와 사냥개로부터 쫓기던 알몸의 여인이 마침내 붙잡히는 장면을 담아내고 있다. 말에서 내린 빨간 망토를 걸친 기사는 잔인하게도 날카로운 칼로 여인의 등을 단번에 간통한다. 그리고는 죽은 여인의 몸에서 심장을 꺼낸 후에 사냥개들에게 던져주고 두 마리의 사냥개는 오른쪽 그림 아래에서 여인의 심장을 먹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곳은 그림 뒤쪽으로 이 끔찍한 장면의 이전 상황을(첫 번째 그림의 장면) 작게 그려 넣어 이 사건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스타조는 너무나 놀라서 칼을 든 기사로부터 여인을 구하려고 막아서는데 이에 말을 탄 기사가 시간을 멈추고 나스타조에게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들려준다.

보티첼리의 르네상스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영감을 얻어 보티첼리가 만든 작품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첫 번째 작품 - 상류층 가문의 여인에게 사랑을 거절 당하고 라벤다 숲을 거닐던 나스타조가 어느 금요일 숲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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