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슈타트에서(1959년). 왼쪽부터 백남준, 윤이상, 노무라 요시오, 존 케이지.

1958년 9월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의 주최자인 슈타네이커로부터 1959년 다름슈타트 하기강습회에서 연주될 곡 위촉을 위촉받은 선생은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12음 기법을 사용하면서 동양적인 정적과 순음악적인 요소를 첨가한 작품이었는데, 악보를 본 지도교수 보리스 블라허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생을 최초로 국제무대에 데뷔시킨 이 곡은 1959년 9월 4일 저녁 8시 30분, 미국 출신의 젊은 지휘자 프랜씨스 트래비스 지휘로 연주되었고, 프랑크푸르트 방송국 통해 전유럽에 중계 방송되었다.

연주가 끝난 후 청중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청중들은 큰 박수 소리로 환호했고, 냉혹한 비평의 무대에서 선생은 세 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독일의 저명 작곡가 헤르만 하이스는 “내가 여태까지 다름슈타트에서 들은 외국인 작품 중 당신의 작품이 가장 훌륭했다”라고 격려했고, 백남준은 한국에서 태어난 작곡가가 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음악의 본고장 작곡가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승리했다며 뜨거운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마누라, 내가 평생 염원했던 나의 목표는 이제 그 문 안에 들어선 것 같소. 목표는 바로 세계적 수준의 작곡가였소. 작곡가가 내 필생의 천직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오. 그러나 작곡으로서 세계 최전선의 수준에서 인정받게 된 것만은 사실이오. 나는 이 일을 더 계속하겠소. 만약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의 길이 나를 요구한다면 나는 작곡을 던지고, 나의 몸을 던지고, 그 길로 달릴지도 모르오. 내가 천직으로 생각하는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소. 그것은 죽을 때까지 내가 죽도록 당신의 낭군이라는 것이오.”

먼 고국에서 남편의 성공을 염원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은 선생의 격한 감격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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