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컬럼비아대학 방문학자

봄을 부르는 것은 비다. 비가 오고 나면 기온이 조금씩 오르고 밤의 찬 기운도 없어진다. 마른 나뭇가지에 꽃이 피고 꽃무리가 만들어진다. 형형색색의 꽃무리는 꽃 덤불을 만들어 하늘을 뒤덮는다. 아름드리 가로수 위에 꽃만 존재하는 봄의 향연이 극치를 이룬다. 그 아래를 거니는 것으로 객지 생활의 향수를 달랠 수 있다. 고향에서 만났던 벚꽃, 개나리, 목련, 진달래를 여기서도 만나게 되어 외로움을 씻기에 좋다.

뭉게구름이 편안한 날을 만들어 주고 구름 사이의 청명한 하늘이 눈길을 끈다. 하늘 높은 곳에 구름 궤적이 나타나며 비행기가 날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나의 대한민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저 하늘길로 가고 있을 것이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다람쥐들이 몸통 길이만 한 꼬리를 치켜들고 요리조리 흔들어 댄다. 아파트 풀장이 말끔히 정비되었다. 분수도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이곳에 몸을 담그는 시간이 오고 있다.

봄을 재촉하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봄꽃이 꽃비 되어 내린다. 마당에 꽃잎이 모이고 자동차 차창에도 꽃잎이 부딪힌다. 윙윙거리는 송풍기에 맡겨진 꽃잎들이 한곳으로 모아진다.

아가들이 까르르대며 야외 활동을 시작하였다. 볼이 불그스레하고 콧물이 멈추지 않는 모습들이다. 만개하였던 꽃의 자리에 연두색 잎이 얼굴을 내밀며 봄날이 깊어짐을 알린다. 자연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이로운 변화의 묘미를 만들어 준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며 기분 좋은 촉감까지 선물한다. 개구쟁이 아이들이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들고 새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봄은 정들기 전에 벌써 떠남을 준비하는 듯하다.

봄은 땅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하여 떠난다. 겨울 잔디는 노란색 들판을 만들고 마른 잎이 바람결에 조금씩 날리기도 한다. 낙엽이 된 잔디는 어미가 된 듯 자신의 몸을 나누어 토양의 영양을 만들어 준다. 어미 잔디가 남겨준 영양을 듬뿍 받아 새로운 잔디는 초록 잎으로 세상에 올라온다. 초록 잔디밭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아파트 둘레길과 차로 갓길도 초록 잔디밭이다.

우뚝 선 가로수 잎도 무성한 초록색이 되었다. 열기가 올라 새 생명을 끝없이 불어 넣어 초록 무성한 청춘의 계절이 되었다. 연두색과 초록색 그리고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초록색이 공존한다. 색채 마술이 펼쳐지고 있다. 청춘 남녀의 옷이 화려한 유채색으로 바뀌고 아름다운 몸매를 마음껏 뽐내는 시간이 되었다. 아침저녁의 온도 차도 이 계절의 즐거움을 억누르지 못한다. 곳곳에 부활절 파티가 열린다. 아파트 로비에도 주민들이 모여 작은 잔치를 열고 이웃을 불러들인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시간도 이 봄과 함께 끝나고 있다. 자연은 멈추지 않고 희로애락을 반복하고 세상일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영원한 생명, 권력도 젊음도 없다. 자연의 순리는 뜨거운 여름을 벌써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수고한 당신에게 미국의 봄기운을 듬뿍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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