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1950)
결혼식(1950)

선생이 아내가 될 여인을 만난 것은 부산사범학교 교사 시절이었다. 폐결핵으로 인해 각혈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학교에 복직한 선생은 고려심포니의 부산 공연 때 처음으로 같은 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한 이수자를 조우했다.

마음에 때가 없고 순수한 바탕에 정서와 품위를 갖춘 자신의 건강한 반려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선생은 병든 몸과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어릴 적부터 품어온 세계적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이 거의 허물어진 상태였다.

가슴이 소월의 시를 읊게 하는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발화되어 집안도 동료들도 모르게 전개된 사랑은 선생의 가슴에 붙은 폐병 환자라는 주홍 글씨 탓에 한동안 갈등을 겪다가 1950년 1월 30일 결혼으로 환하게 결실했다. 겨울이라 꽃이 없어, 선생의 친구인 화가가 종이로 만들어 준 동백꽃으로 장식한 부산철도호텔 식장에는 400여 명의 하객이 모였고 웨딩마치로 현악4중주가, 축하곡으로 선생의 작품 “고풍의상”이 연주되었다.

이수자와의 결혼은 선생의 인생에서 큰 전기(轉機)였다. 민족과 예술을 향한 높은 이상(理想)을 품고 연애도 가정도 단념하고 청교도적 정신으로 매진해온 선생이, 바닥 난 건강과 경제 때문에 이상을 향한 길에서 이탈하여 소시민의 진로로 추락하려는 시점에 만난 사랑은 다시 선생을 푸른 생의 궤도로 진입시켰다. 운명적 사랑이 핏기 잃은 종이꽃을 싱싱하게 살아 있는 꽃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저녁 강변의 원앙처럼 다정했던 부부는 가끔 젊은 시절 사랑의 때를 추억하곤 했다.

“지금의 당신 정도 같으면 시집올 사람도 많을 텐데,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는 금강석이 흙 속에 파묻혀 있었으니 다른 사람이 찾아내지를 못한 거예요.”

“흙 속에 있는 금강석을 발견한 당신의 식견이 대단한 거야.”

이중도(시인, 통영국제음악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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