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호주 선교사의 집’ 복원 본격화
1894년 이후 47년간 교육·의료 활동 통영근대화 이끌어
기념사업회, 일부 부지 확보 사업비 마련 시민운동 추진

 

호주 아이가
한국의 참외를 먹고 있다.
호주 선교사네 집에는
호주에서 가지고 온 뜰이 있고
뜰 위에는
그네들만의 여름 하늘이 따로 또 있는데
길을 오면서
행주치마를 두른 천사를 본다.

(김춘수 유년시1)

 

통영이 자랑하는 서정시인 김춘수 시인이 어릴 적 보았던 호주 선교사의 이미지가 싯귀 속에 남았다. 김춘수 시인은 호주선교사들이 운영한 진명유치원을 나왔다.

김춘수 시인이 당대의 시인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그 처음을 찾아 거슬러 간다면 파란 눈의 선교사에게 노래와 글을 배우던 진명학원 시절의 어린아이 김춘수 때가 아니었을까.

 

 

어항 특유의 개방적인 정신이 깃들었던 통영은 경남지역의 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 근대화된 도시였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통제영의 역사와 바닷가 도시가 갖는 개방성 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정신에 불꽃을 일으킨 직접적인 계기는 호주에서 온 선교사들의 활동이었다.  

그 시작은 구한말인 1894년.

호주 출신의 개신교 무어(Elizabeth S. Moore, 한국 이름 모이리사백) 선교사가 통영을 방문하면서 부터다.

당시 부산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그녀는 부산 선교본부와 본국에 보고서를 보내 통영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선교 활동을 호소했다. 9년이나 이어진 그녀의 끈질긴 노력은 마침내 부산선교부의 마음을 움직였고, 본국으로부터 지역 선교부 설치 결정을 끌어냈다.

그리하여 1913년, 호주장로교 통영선교부가 지금의 중앙동 269-1번지에 들어섰다.

24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통영을 근거로 인근 거제와 고성, 진해까지 선교활동을 벌인 근거지가 마련된 것이다. 이들 선교사들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것 외에도 교육, 의료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사업을 펼쳤다.

이들은 교회를 비롯해 진명학원 등 5개 교육기관을 설립, 근대식 교육을 시작했다. 24인의 선교사 중엔 지역 최초의 양의사도 있었다. 1914년 통영에 진료소를 연 테일러 선교사다.

이들의 교육을 받은 통영의 아이들은 자라서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됐으며 통영 근대화의 주춧돌이 됐다.

 

또 이렇게 통영에 자리잡은 근대화의 물결은 천재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형제, 극작가 박재성, 초정 김상옥, 미술가 전혁림, 시인 김춘수 등 수많은 예술인이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됐다. 호주 통영 선교부는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기까지 47년간 통영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최근 통영 근대문화의 시작점이 되었던 호주선교사를 기억하는 기념사업이 필요하다는 시민운동이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통영 호주선교사 기념사업회(회장 서상록)는 27일 오전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호주선교사의 집과 옛 진명학교를 복원해 통영 근대사를 볼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사업회 수석부회장인 배영빈 목사는 “안타깝게도 이런 역사를 간직한 호주선교사의 집은 1980년대 말 산복도로 개설에 편입되면서 철거돼 흔적만 남았다”며 “선교사의 집 복원에 뜻을 모아 2016년 사업회를 창립하고 옛날 건물이 있던 자리(중앙동 269-1)에 본관 건물과 진명학교를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업회는 3천㎡의 터에 50억 원을 들여 선교사의 집과 선교사 기념관, 진명학교를 복원하기로 하고 선교사의 집에는 전시관을 설치해 항일민족관, 의료·복지관, 문화·예술관으로 활용하고, 기념관에는 호주 선교사관, 자료실, 연구실 등을, 진명학교에는 근대 교육관과 도서관, 아카데미 하우스 등을 배치한다는 복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사업회는 통영시에 12억 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시민사회와 종교계 모금 운동 등을 벌일 계획이다.

배영빈 목사는 “100여 년 전 호주 선교사들의 활동이 통영의 근대화를 이끈 거름이 되었듯이 지역사회가 나서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며 “진명학교 출신 등 각계각층의 후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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