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후 통영과 고성 거제 일대는 대형 매립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충무시 시절부터 진행해오던 북신만 매립공사가 막바지를 달려가고 있었고 통영군 시절 계획됐던 죽림만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거제시도 옥포항 매립공사를 진행하는 등 대규모 매립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매립용 토취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각 현장에서는 토취장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공기를 조금이라도 단축하려면 안정적인 매립용 토석 확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매립현장과 가까운 광도면과 도산면 일대에는 여러 곳의 토취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 토취장 주변에는 발파소음 등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았었다.
23년을 끌어온 삼화토취장 문제도 이같은 상황에서 시작됐다.

▲ 마을주민들이 통영시와 땅주인을 상대로 20여년을 싸워오는 동안에도 암반을 드러낸 삼화토취장은 묵묵히 마을 뒤편을 지키고 서 있다.

 

1995  긴 싸움의 시작
 
삼화토취장의 시작은 23년 전인 1995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통영시가 북신만 매립에 사용할 토취장 가운데 하나로 용남면 대방포와 양촌, 음촌마을 뒷산을 지목한 것이 그 시작이다. 
 
산의 흙을 파서 북신만에 쏟아 붓는 이 작업은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곧 암반이 드러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흙을 파 들어간 지 1년 만인 1996년 6월, 산 전체가 암반으로 이루어진 거대 돌산임이 드러난 것이다.
 
공사는 중지될 수밖에 없었고 6개월 뒤인 1997년 1월, 통영시는 당시 북신만 매립 시공사인 한진중공업과 적지복구 약정서를 체결하게 된다.
 
이미 거대 돌산이 된 이곳을 더 이상 매립용 토취장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복구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 약정은 적지복구를 명목으로 내세웠을 뿐 사실상 채석을 허가해 준 약정이었다.  
 
당시 약정서에는 발파를 통해 산을 깎을 범위가 확정돼 있었고, 주민에게 발파동의서를 받는데 통영시가 협조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1997 뜻하지 않은 주민반대
 
그러나 통영시의 계획은 생각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발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극심한 주민반대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발파를 통해 삼화토취장을 적지복구 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대방포와 양촌, 음촌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촌마을 김동명 이장은 “시가 북신만 매립을 위해 흙을 퍼가는 것 까지는 공익적인 차원에서 인정했지만 발파까지 하는 채석허가를 편법으로 내준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통영시와 한진중공업은 적지복구 계획을 묻어둘 수밖에 없었고 토취장 역시 암반을 드러낸 상태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2001 1차 행정소송으로 비화
 
5년 뒤인 2001년 2월, 통영시는 한진중공업과 체결했던 적지복구 약정을 호방종합건설(주)이 잇는다는 ‘권리의무승계’ 약정서를 체결한다.
 
이어서 다음 달인 3월에는 호방종건에게 적지복구를 이행하라는 개발행위 변경허가까지 내준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이었다. 당시 허가대로라면 호방종건은 삼화토취장에서 잔량 36만8천696㎥의 암반을 깎아 적지복구해야 했다.
 
지난 수년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영시가 갑작스럽게 사실상 채석허가를 밀어붙이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또 다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삼화리 주민들의 반대투쟁은 격렬했고, 이 과정에서 통영시 공무원이 업무방해로 고발하는 바람에 여러 주민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의 목소리는 결국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통영시장을 상대로 개발행위 허가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 소송은 1심, 2심, 대법원까지 3년을 이어간 끝에 모두 주민들이 승소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통영시는 적지복구라는 명목으로 편법을 써서 실질적으로는 채석을 허가했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모든 것이 일단락 되는 듯 했다.
 
2009 통영시 적지복구 재시도
 
그러나 다시 5년 뒤인 2009년 삼화토취장 문제는 또 불거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호방종건이 초원종합건설(주)로 이름을 바꾸고 2009년 6월 통영시에 240억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삼화토취장은 또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통영시는 초원종건(주)에게 적지복구를 하라고 통고했고, 초원종건은 다음해인 2010년 종전과 똑같은 도면을 들고 착공신고를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적지복구 설명회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등 극렬하게 저항했다.
 
주민들은 2013년 공사를 금지하라는 소송을 다시 청구했고 5년여의 소송 끝에 1심에서는 일부승소, 2심에서는 패소했었다.
 
2018 드디어 주민승소
 
지난 9일 마침내 대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재판부는 “삼화토취장의 채석공사는 사실상 허가 없는 위법 공사”라며 “공사소음이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이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위법한 공사의 소음까지 참을 이유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충무시 시절부터 23년을 이어온 기나긴 싸움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주민들의 승리로 마감될 것으로 보인다. 
 
소송 대리인 김광주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은 기속력을 갖기 때문에 환송심 역시 대법원과 같은 판단을 할 것이므로 사실상 삼화리토취장의 법적 분쟁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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