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정원 가꾼 김종태 해솔찬 대표

 

 

 

도산면 저산리 봉화산 자락.

경남도 민간정원 2호로 등록된 해솔찬 정원이 자리한 곳이다.

멀리 사량도가 보이는 1만6천500㎡(약 5천평)의 터에는 사향나무, 소나무, 동백, 종려, 원추리, 수선화 등 130종의 나무와 야생화가 푸르름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주인장 김종태씨가 40여년 손과 땀으로 가꾼 평생의 역작이다.

김종태씨는 이곳에서 나고 줄곧 이곳에서만 살았다. 


도시로 나가고 싶어하는 시골 청년들과 달리 그는 팍팍한 도시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무와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나무가 좋았습니다. 마을 뒷산 정상에 올라가면 평평한 터가 넓게 있어요. 도산 앞바다의 비경이 펼쳐집니다. 여기다 나무를 심고 길을 내고… 내것도 아닌 땅에 쓸데없는 공상도 참 많이 했었죠.”

이 곳 해솔찬은 원래 6대조 어르신들을 모시던 종산(宗山) 자락에 달린 계단식 밭이었다.

처음엔 밭농사 대신 밀감나무 500주를 심어 가꾼 것이 나무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러나 한파로 얼어 죽고 다음에 심은 유자나무 150주는 유자값이 점차 떨어지면서 도저히 유지할 수 없어 베어내야 했다.

복숭아 나무도 100주 정도를 심었는데 당시에는 이 곳 저산리 교통이 불편해 유통문제로 내다 팔지는 않았다.

“복숭아 나무를 키울 때가 우리 세 딸이 한참 자랄 때 였어요. 각자 자기 나무를 정해놓고 그 나무에 열린 복숭아를 따 먹었죠. 그렇게 먹는 복숭아는 그야말로 꿀맛이죠. 제잘제잘 아이들과 일하다 놀다 이 산자락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나무에 정성을 쏟던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소나무 분재에 재미를 붙였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 야생화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이곳 해솔찬이 지금의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산에 거처를 마련한 후 아침저녁으로 돌봤고 따뜻한 해가 드는 곳에 소나무 기운이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아 ‘해솔찬’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집 앞 소나무 방풍림 등 일부를 빼고 대부분 새로 심은 것들입니다. 묘목을 가져다 심고, 씨앗을 뿌려 가꾼 거지요. 꽃도 모종이나 씨앗으로 키우고 증식시킨 것들이고요.”

김 씨는 사람 키의 두배나 되어 보이는 종려나무를 가리키며 모두 씨앗을 뿌려 키워낸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들이면 뚝딱뚝딱 금방 멋들어진 정원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제가 만든 해솔찬은 달라요. 전정이며 거름주기며 1년 동안 나무 하나에 수 십번의 손길이 갑니다. 잔디도 고루 밟기 위해 안 밟았던 곳을 찾아 밟습니다.”
 

산책로를 걷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잔디밭과 만났다.
 

이 공간의 이름은 ‘바다와 차’.

돌로 벽을 쌓은 오두막집이 자리하고 있고 반대편엔 채 한평도 안 될 듯 보이는 판자집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김씨는 이 곳을 일하다 힘들면 차를 마시는 다실이라고 소개했다.

재료는 폐목을 써서 톱으로 망치로 직접 지었다.

옛날 창살문을 열면 두 세명이 앉으면 꽉차는 공간이 보이고 커다란 창으로 바다가 보인다.

“여기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비록 돈은 없지만, 마음은 재벌입니다.”

다도에 재미를 붙인 김씨는 늦은 나이에 다도를 전공하는 원광대 디지털대학 4년 과정을 3년만에 졸업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른 아침 빗자루를 챙겨 들고 산책로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비질을 할 때마다 요즘도 저기엔 무엇을 심을까, 어떻게 하면 나무 세력을 높일 수 있을까 등을 생각합니다.”

이제껏 누구의 도움 없이 아내와 둘이서 단장하다 보니 세월과 비교하면 변화가 더뎠지만, 김 씨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좋아하는 식물을 돌보며 지내온 나날이 즐겁고 보람도 큽니다. 자연은 스트레스를 주는 법이 없거든요.”

김 씨는 자신의 땀이 밴 해솔찬이 100~200년 지나 후손들에 게 좋은 유산으로 기억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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