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탁화가 김재신

걸어가면서 만날 수 있는 마을 속 미술관 ‘갤러리미작’에서 김재신 작가(61)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 ‘바다, 그 빛을 조각하다’에서는 김재신만의 독특한 어울림과 물결을 가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흔히 바다를 어머니의 품에 비유하곤 한다.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고 포용하기 때문이다. 끝 모를 그 깊이는 또 얼마나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가. 그러기에 동서고금의 수많은 화가들이 바다를 그리는가 보다.

김재신 작가도 ‘바다의 화가’라 불릴 만큼 바다를 주 모티브로 삼고 있다. 김재신 작가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특유의 ‘조탁’기법을 활용해 바다를 구현해 낸다. 김재신 작가의 바다는 더 많은 색을 품고, 더 많이 일렁인다.

김재신 작가는 “나의 바다는 좀더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 무늬가 있는 바다”라고 표현한다. 수많은 사람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품고 그것을 빛으로 산란해 내는 바다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김재신 작가는 3~40겹의 색을 물감으로 켜켜이 올린 다음 조각도로 섬세하게 깎아내 그만의 바다를 만든다. 마치 건축 설계를 하듯이, 어떤 색 위에 어떤 색을 올려야 원하는 표현이 되는지를 미리 구상해 물감을 쌓는다고 한다. 한 겹 올리고 마르는 데만 해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수개월 이상 걸려야 완성된다.

물감을 수십 번에 걸쳐 켜켜이 올리고 조각도로 깎아내어 작품을 완성한다.

처음 ‘김재신’이라는 이름을 알렸던 동피랑 시리즈에서도 그는 바다를 그렸다. 아니 오히려 바다의 한부분에 동피랑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는 줄고 바다만 남았다.

“비워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야기를 비우니 바다만 남네요.”

통영에서 나고자란 김재신 작가는 ‘작가’라거나 ‘화가’라는 이름조차 무겁다고 말한다. 그저 그림이 좋아 계속 그림 곁에 머물렀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구도를 하듯이, 수행을 하듯이, 날마다 그림 옆에서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온 끝에 그의 굽이치는 바다가 있었다.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 반,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실에 나간다. 해가 뜨는 시간이 그의 출근 시간이다. 일요일도 없고, 추석, 설날도 없다. 작업실에 나가지 않는 날은 서울에서 초대전이 열리는 오픈식 날뿐이다.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는 저녁 7시까지 고도의 집중력으로 바다와 그 바다에 쏟아지는 빛을 조각한다. 장인의 인내가 이만할까. 이제는 몸이 알아서 빛살의 깊이와 파도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젊은 날 그는 동아대 서양학과를 다니다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림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돌아오지 않았으리라.

그는 통영의 바다가 보여주는 대로, 통영의 바다가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입시미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개인 강습을 하기도 했지만, 아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그는 전업작가가 됐다.

“그저 작품을 해야 한다는 무식하고 용감한 생각으로 그림만 그렸습니다.”

연탄 시리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지나야 했던 그 시기, 그는 가난한 인생이 응축되어 있는 연탄 시리즈를 그렸다. 이 시리즈는 2012년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 갤러리 초대전에서 소개됐다. 독특한 기법의 연탄 시리즈는 보는 사람마다 감동을 받았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남루한 삶을 집에 걸어두기 꺼렸기 때문일까. 정작 팔리지는 않았다. 대신 같이 들고 나간 동피랑 시리즈가 모두 팔렸다. 김재신 작가의 독특한 화풍이 주목을 받아, SBS 방송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방송을 보고 전시회를 찾아온 사람이 여럿 됐다.

방송을 보고 찾아와 그림을 구입한 한 사람이 김재신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구입한 그림을 들고 아는 갤러리를 다 찾아다니며 “이렇게 좋은 그림이 있다. 전시를 해 봐라.”고 권유하고 다녔다.

어느날 서울 청담동에서 갤러리를 하는 한 관장이 통영을 찾아와서, 김재신 작가는 자기도 모르는 열혈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단다.

이후 김재신 작가는 서울오픈아트페어에 나가 주목을 받았다. 작가 이름이나 경력보다 오직 작품만으로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트페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나간 아트페어에서 그는 첫날에 100호짜리 그림을 팔았다.

“촌놈이 처음으로 서울아트페어에 나간 거였는데, ‘아,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아트페어에서 그는 가져간 작품을 모두 팔았다.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조탁 기법과 함께 김재신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화단에 알려졌다. 입에서 입으로, 김재신의 작품에 반한 팬들이 그의 활동 영역을 넓혀 주었다.

그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김재신 작가는 매년 2회 이상 서울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가장 힘든 것은 ‘나와의 싸움’이지요. 때로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싶기도 한데, 작업실에 나오는 것….”

그의 바다 시리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실에 나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만들어낸 선물이다. 이제는 몸이 알아서 작업실로 향하도록 인박혔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이 생활이 작가에게 스며든 것인지, 작가가 예술 속에 스며든 것인지 알 수 없다.

바다가 품은 이야기만큼 수많은 색깔을 겹겹이 덧칠하고 일렁이는 햇살을 조각하는 사이, 김재신 작가는 어느새 바다의 일부분이 되었다.

▶미작갤러리

통영시 중앙로 274 (055-646-9069)

Open (11:00-18:00)

바다
동피랑
미작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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