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은 인생의 유한함 앞에 예술이 주는 감동의 무한함을 절묘하게 대비시킨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들의 삶과 반대로 그들이 남긴 사후의 여러 작품들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통영 예술인들의 예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마치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돌아가신 뒤에나 어렴풋이 알게 되는 자식의 마음과도 같다고나 할까? 가까이 있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 통영의 예술가, 그 영웅들의 발자취를 되새겨 본다.

에베레스트 산이 가장 높은 이유는 히말라야라는 거대 산맥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의 탄생 역시 적절한 환경과 배경이 뒷받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영의 영웅들 역시 통영이라는 배경 아래서 탄생되었다. 통영이 어떠한 곳인가? 남해안 한려수도의 중심지로서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수산물로 풍요가 넘실대었으며, 통제영의 수준 높은 문화적 욕구가 최고를 지향하는 장인정신을 잉태하였다. 근현대의 수많은 예술가 출현 이전에 이미 12공방을 비롯한 무수한 무명의 예술적 장인들이 예술의 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드넓은 바다의 성품을 닮아 배타적이지 않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통영의 개방적 포용 자세도 영웅들의 탄생에 일조하였는데, 실제로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했지만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약 2년간 통영에 머물며 황소, 흰소, 통영풍경, 세병관 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욕지도 풍경 등 무려 4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미술 활동의 전성기를 맞았던 그 예술적 혼을 한껏 피워냈던 이중섭의 예는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통영의 예술적 기운은 결국 1945년 통영문화협회의 발족으로 집대성된다. 악랄한 일제의 지배를 감내한 통영의 문화예술인들이 새 나라에 걸 맞는 새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었는데,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히 대한민국 예술원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문학의 유치환·김춘수·김상옥, 음악의 윤이상·정윤주, 미술의 전혁림, 연극의 박재성·김용기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해방된 조국의 최남단 통영에서 외부의 아무런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생겨난 통영문화협회는, 지역은 물론 나라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소설가 박경리, 수필가 김용익, 화가 김용주.장윤성.김형근.이한우.심문섭, 염색공예가 유강렬, 사진가 류완영 등이 뒤따라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통영은 한국 예술의 본향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통영의 민속 예술은 어떠한가? 통제영 12공방으로 대표되는 나전칠기, 통영갓, 통영 소반, 통영 대발 등은 조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지금껏 그 맥이 이어지고 있고, 한산대첩을 기념하던 통영 승전무와 경남 탈놀이의 대표 격인 통영 오광대는 물론, 남해안 도서 지방에서 제의(祭儀)와 함께 공연되었던 남해안 별신굿까지 단일 기초단체로는 가장 많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통영인 점을 상기해 본다면, 민속 예술에서도 통영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우리 통영인데, 최근 문화도시 선정 문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민의 자발적 문화 역량의 부족이라는 매우 부끄러운 이유로 탈락되었다. 그것은 과거 영웅들이 주축이 된 통영문화협회의 주체적·자발적 정신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것도 없었던 황무지와 같았던 때에도 오직 예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지역을 이끌어 갔었던 영웅들의 발자취가 더욱 그리운 이유이다. 통영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시민 모두가 예술의 향기로 행복해지려면 영웅들의 정신을 다시 나침반 삼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통영시립미술관 건립, 박경리 테마마을 조성, 통영문화예술 흔적답사 프로그램 개발, 이중섭화백 작품 유치 및 거리지정, 통영예술의 향기 시민대공원 조성, 통영문화예술회관 건립, 통영예술고등학교 설립 등 이제는 통영의 곳곳을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한국 예술의 본향다운 통영을 디자인해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 우리 통영이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문화예술의 명품도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지금도 남망산에서, 강구안에서, 그리고 시내 어딘가에서도 우리 영웅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예술의 도시 통영을 기대해보며 영웅들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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