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좌 작가

‘이게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겠나?’

페퍼로 문지르고 씻어내고 다시 옻칠을 덧입히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김정좌 작가는 옻칠회화를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장인의 노고에 가까운 반복작업을 해야 하지만, 옻칠회화는 김정좌 작가에게 살아가는 희망이다.

김정좌 작가가 옻칠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다. 칠공예를 전공한 그는 우리 전통 옻칠이 주는 매력을 일찌감치 맛봤다.

대학 졸업 후 통영으로 돌아온 김정좌 작가는 충무청년미술회 활동을 했다. 결혼하면서 육아에 전념했던 그는 큰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회화를 배우며 다시 미술계에 발을 디뎠다. 통영문화원에서 하는 교양강좌로 시작했지만, 그림에 대한 오랜 목마름이 있었기에 3개월 과정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개인 강습을 받으면서 더 그림 속에 빠져들었다.

얼마 뒤 통영옻칠미술관이 생기면서, 김정좌 작가는 옻칠연구원이 되었다.

“놀이동산 키다리광대가 좋은 선물을 준 꿈을 꾼 다음에 옻칠미술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에게는 운명 같은 만남이 된 거지요.”

그때가 2007년이다. 김정좌 작가는 대학교 ‘과목’이 아닌 진짜 ‘예술’로서의 옻칠을 만났다. 김성수 관장은 전재산을 털어 미술관을 짓고 통제영12공방이 지켜온 통영옻칠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한겹 한겹 칠을 올릴 때마다 점점 색이 맑아지고 은은한 빛이 살아나는 옻칠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매력적이었다.

“저는 공예로 옻칠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 옻칠로 회화를 한다는 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옻칠회화는 시간이 갈수록 발색 과정을 거치며 더 영롱해지고 맑아지기 때문에 더 가치 있게 여겨지더라고요. 제 작업실에 오신 분이 1년 만에 오셔서는 같은 작품을 두고 새로 그린 그림이냐고 물어봐요. 그만큼 색이 달라진 거예요. 10년 이상 색이 변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낡아진다. 그러나 옻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고 맑아진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세월이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김정좌 작가는 옻칠회화에 빠져들었다.

김정좌 작가가 외부에 알려진 계기는 2015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있었던 아트페어였다. 대학 4년을 제외하고 통영을 떠나본 일이 없는 작가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유화를 그려서 옻칠로 도포한 것이 아니라, 옻칠을 쌓아 올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옻칠회화를 접한 다른 작가들이 호평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일신문사 안에 내일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박수현 씨가 자신이 따로 운영하는 평창동 퀄리아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이를 계기로 김정좌 작가는 통영보다는 서울, 부산 등 외지에서 더 많은 전시를 하는 작가가 됐다.

“요즘에는 옻칠 캔버스를 사와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백골과 베가 떠서 작품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되니까 저는 처음부터 제 손으로 하는 게 마음 편해요.”

장롱이든 문갑이든 옻칠하기 전의 나무 형태를 ‘백골’이라 한다. 회화는 캔버스에 그리기 때문에 옻칠회화의 백골은 나무 캔버스다.

처음 백골에 옻칠을 하면 언제 칠을 했느냐는 듯이 나무속에 스며들고 만다. 칠장에 넣어 건조시킨 다음에 사포로 문지르고 다시 옻칠을 하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야 점점 제 빛을 찾아 가며 까만 광채가 나는 옻칠회화 캔버스가 만들어진다.

캔버스가 만들어진 다음부터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베를 덧바르거나 두부를 으깨 붙여 질감을 살려가며 작품을 만든다. 천연광물 물감으로 색을 표현하거나 자개, 계란껍질을 붙여 구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마다 작품이 건조장을 드나들게 되는데, 그 횟수가 족히 백 번을 넘는다. 옻칠회화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 몇 달이 걸리는 이유다.

“지금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 있는데, 어려움을 당하니까 더욱 옻칠 작업이 위안이 돼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살아야겠다는 것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새롭게 느끼게 되지요.”

아직까지 그는 완성된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옻칠이라는 도료는 알수록 신비하다. 때로는 감히 그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동안 울도 담도 없이 외로운 길을 걸어왔는데, 통영신문에서 초대전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옻칠 재료의 질감을 살려내는 작품을 만들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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