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환 물빛소리정원 대표

“식물이 자라려면 물과 빛과 소리-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물빛소리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도산면 수월리 아름다운 바닷가에 수국 꽃 가득한 ‘물빛소리정원’이 있다. 통영시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있었던 이충환 대표가 15년 동안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꿔 만든 민간정원이다.

처음에 눈을 사로잡는 건 갖가지 종류의 수국이다. 보라색, 분홍색, 파란색 등 색깔이 다른 수국뿐 아니라 색나비무늬산수국, 팝콘수국 등 수국만 해도 2천 본이다. 팝콘수국과 일반 수국이 같이 연리지로 자라는 것도 있다.

수국뿐 아니라 작약, 붓꽃, 낮달맞이꽃이 오솔길마다 한가득이다. 돌담에 기대 핀 개망초도 여느 꽃들에 뒤질세라 키자랑을 한다.

“만약 저 안에 피었다면 다른 꽃을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뽑을 테지만, 이 담에 피었으니 안 뽑으려고요. 잡초라도 예쁘잖아요?”

꽃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이충환 대표는 연신 핸드폰을 올려 꽃사진을 찍는다. 마치 이곳에 처음 놀러온 사람처럼.

“어제 본 똑같은 꽃이 아니에요. 그냥 볼 때는 매일 같아 보여도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이만큼씩 쑥 자라 있습니다. 사람도 같은 아기 얼굴을 매일 찍잖아요. 하지만 한 번도 똑같은 아기 얼굴이 아닌 것처럼 꽃들도 그래요.”

오솔길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폼이 딸바보 아빠 같다.

“이것은 깡깡나무예요. 불 속에 들어가면 터지는 소리가 깡깡 난다고 해서 깡깡나무지요.”

식물의 이름, 속성, 원산지까지 줄줄 꿰며 꽃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경학과를 나온 이충환 대표는 통영시에서도 조경 관련 업무를 30여 년 하고 2019년에 퇴직했다.

이곳은 15년 전인 2006년에 집안 형님의 자본을 보태 구입했다. 1만8천 평의 바닷가 땅이었다. 퇴직하기 전까지는 주말마다 이곳에 와 나무를 심고 돌을 옮겼다. 그리고 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원지기가 됐다. 이렇게 가꿔 꾸며놓은 곳이 7천 평, 아직도 바닷가 쪽은 야생 그대로다.

“3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형이어서 바다와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정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충환 대표는 일찍이 자연의 치유 기능을 접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심한 병을 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염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당시에는 한창 건강할 청소년 나이에 황달이 오고 하니 참 막막했지요. 2년간 병원을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학년 말에 부산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으려고요.”

다행히 학력고사 시험 전에 병이 호전돼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조경학과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 한 채 조경학과로 진학했다. 나무와 자연 속에서 그는 치유의 힘을 경험했다. 자연을 배우는 것은 생명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

“조경학과는 제 가치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 학문입니다. 권력이나 출세와는 좀 먼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자연을 연구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근본적인, 원초적 철학과 같은 학문입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조경학과를 택할 겁니다. 더 적극적으로, 더 좋은 대학의 조경학과를 가려고 하겠지요.”

그에게 조경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이순신공원 조성 등 도시를 조경하면서 그는 퇴직 후에 통영이 자랑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보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프랑스, 영국, 중국 등 나라별 정원을 구성하고 싶어요. 통영이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직은 엄두를 못 내겠네요. 동화에서 나오는 나무 위의 집도 지으려고 터를 닦아 놨어요. 이제 겨우 베이스만 되었다고 볼 수 있죠.”

베이스만 되었다고 하지만, 물빛소리 정원을 찾는 사람들은 바다와 꽃과 정원에 감탄을 한다.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정확한 데이터가 어렵지만, 현재 민간정원은 전국에 48곳이에요. 경남에는 11곳이 있지요. 그중 통영 도산면에만 우리를 포함해서 3곳이 있어요. 분재를 주로 하는 ‘춘화의 정원’과 산책길이 있는 ‘해솔찬’. 민간정원을 하는 분들이 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춘화의 정원은 카페를 이용하는 것으로 입장료를 대신하지만 해솔찬은 5천원, 물빛소리정원은 4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통영시민은 50% 할인해 2천원을 받습니다. 사실은 개방에 따른 최소한의 경비를 나누자는 것이지만, 내가 더 발전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페이로 약속을 확인하잖아요? 개방에 따른 최소한의 대가 지불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충환 대표는 정원에 치유 기능이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으면,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치유받고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먼저 내가 치유받고 싶어 만들었어요. 이 곳에서 내가 나무, 꽃들과 대화하며 경험하는 치유를 나누고 싶어요.”

이 정원에선 물, 빛, 소리를 먹고 자란 꽃들이 힐링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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