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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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신문
  • 승인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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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어머님이 나 혼자 집을 지키게 하고 오일장을 떠나는 날은 하루가 지루하였다. 집에 어머님이 계시지 않으면 공부도 놀이도 재미가 없었다. 친구하고 노는 시간을 보내고 풀 뜯어서 돼지에게 먹이고 오후가 되면 어머님을 기다리게 된다.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개암나무에 올라가면 저 멀리 고갯길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넘어서 어머님이 오시게 될 것이다. 행여나 어머님이 오시는지 확인하러 나무에 올라가서 먼 고갯길을 바라보곤 하였다. 개암나무 가지가 위험하다고 올라가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지만 나는 몰래 오르곤 하였다. 해거름에 어머님이 오시면 나에게 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았다고 한다. 참 이상도 한 일이다, 오일장은 거의 한나절을 걸어가야 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나의 나무 타기를 보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만 나무에 올라간 것은 사실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는 종종 개암나무에 올라가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엄마를 마중하곤 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의 카리스마는 대단하였다. 공부가 미진하면 집에 보내주질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둠이 내린 시간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10리 길(4Km)에는 무서운 길이 두 곳이나 있었다. 시신을 안치한 꽃상여를 장강채에 얹혀 상여꾼들이 어깨에 메고 장례를 치렀다. 장강채를 우리들의 등하교 길 도랑 아래에 보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곳에 종종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하였고 늦은 밤 등골이 오싹해지는 곳이다. 늦은 시간에도 집에 오지 않는 자식을 위하여 어머님은 호롱불을 들고 나를 마중 나왔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멀리서 깜빡거리는 불빛이 나타났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때론 엄마 등에 업혀서 소곤소곤 옛이야기를 들으며 등에서 잠이 들기도 하였다.

나의 할머님은 6.25전쟁 때 두 아들을 잃었다. 이데올로기의 다툼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자식들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그것도 며느리와 손자까지 둔 아들이 없어진 것이다. 첫날에는 오늘 저녁에는 오겠지 하다가 며칠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자식, 동생 그리고 남편을 찾아 나선 할머님, 아버님 그리고 숙모님들의 애환을 들었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우리집 역사의 한 줄기였다. 그러한 마중을 하지 못하고 할아버님, 할머님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 숙모님들도 모두 저승으로 가셨고, 숙부 두 분은 아직도 우리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역사는 이분들에게 무엇이라고 답하여 줄 수 있을까? 자식을 마중하지 못하고 저승에 가신 할머님은 영면에 들 수 있었을까? 저승에서라도 기다리던 자식을 마중하고 해후의 시간을 갖길 기도한다.

우리에게 마중할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고마움이 절실하다. 사랑으로 용기를 얻고 무서움과 두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이다. 아직도 집에 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가슴 아린 역사들이 뇌리에 맴돈다.